20180208 그리스 - 파나기아 찰케온 성당, 로만 아고라, 아요스 디미트리오스 성당
4세기에 지어진 분수대의 유구로 고대 로마제국에서 동로마 제국으로 바뀌는 과도기에 지어진 것이다.
오스만 제국때도 그대로 사용되었고 그리스 독립 후에도 1960년대까지 사용됐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지어진 목욕탕으로 그리스 독립후엔 'Phoenix bath'라는 이름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지나가는데 하맘 정문 앞에서 롬인(집시) 소년이 오줌을 싸고 있었다.
한때는 오스만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가와 장인들이 이 곳을 만들었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스프레이를 뿌리고 노상방뇨를 하는 곳이 되버렸다. 기분이 더러웠다.
관리소홀일수도 있고 그냥 방치해놓은 것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문화재를 조리돌림하면서 욕을 보이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이러한 방치상태가 그리스라는 나라의 문화적인 격에 맞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그리스인들은 그 정돈 아니겠지만 우리 한국사람들은 일제강점기 건축물을 철거할때 일본에게 한방 먹였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 사실 그리스인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부터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한국의 일제강점기 건축물들이, 그리스의 오스만 제국 건축물들이, 그리고 터키의 비잔틴 시대 건축물들이 각 나라의 정부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억의 장소로서 활용되길 바라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생각일까?
'파나기아 찰케온' 성당으로 1028년에 지어진 성당이다.
서쪽 입구의 비문에 새겨져 있는대로 이 곳은 성당이 지어지기 전에 본래 이교도(로마 다신교)들의 의식이 치러지던 곳이었다.
성당이 동로마 시대에 어떤 이름으로 불렸는진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오스만 제국 시대엔 이슬람사원으로 개조되어 카잔질라 자미(Kazancilar Camii)로 불렸는데 구리 대장장이의 사원이라는 뜻이다. 현재 이름인 파나기아 찰케온(구리 대장장이의 성모교회)도 이슬람사원일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3개의 돔이 있으며 콘스탄티노플에 지어진 성당들과 동일한 구조를 보여준다.
나르텍스 팀파눔에 동로마 제국 시대의 프레스코화가 남아있다.
지금은 비어있었는데 과거의 공구용품점 같았다.
오래전에 자취를 감춘 아크릴 간판의 모습이 향수를 불러왔다.
로마시대에 지어진 아고라 유적이다.
원래 있었던 아고라 구역보다 축소된 부분만이 남아있다.
동쪽엔 조폐국과 도서관, 극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로마제국이 자랑했던 선진문명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 전에는 마케도니아 왕국이 있었겠고 말이다.
솔직히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그리스가 역사의 전면에서 활약했던 황금기와 비교해서 몰락했다는 느낌보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모습에서 왜 그리스의 문화가 서양과 중근동까지 퍼져 나갔는지 잘 느낄 수 있었다.
남쪽엔 상점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요스 디미트리오스 성당으로 고대 로마시대 목욕탕이 자리했던 곳으로 디미트리오스 성인이 순교한 곳이다.
이후 5세기에 성당이 지어졌고 전소되었지만 원형을 살려 7세기에 재건된다.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게 정복당한 뒤로 1493년에 성당은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는데 이때 바뀐 이름이 '카시미예 자미(Kasimiye Camii)'다. 카시미예는 디미트리오스 성인의 이슬람식 이름으로 기독교와 이슬람 모두에게 존경받았던 성인이라고 한다.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고나서도 기독교도들이 디미트리오스의 무덤에서 참배하는 것이 허용됐다고 한다.
1912년 도시가 그리스령이 된후 카시미예 자미는 다시 성당으로 복원된다.
1917년 대화재로 인해 성당의 상층부가 대부분 전소되게 된다.
대화재에 관해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데 원래 불이 기독교인 마을인 동쪽으로 옮겨붙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아요스 디미트리오스 성당으로 불이 옮겨붙어 몇시간동안 타게 된다.
그런데 성당이 전소되면서 불은 기독교인 마을 방향이 아닌 바다 쪽인 남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사람들은 디미트리오스 성인이 다시 한번 자신을 희생해 기독교인들을 구한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 후 복원작업에서 1층과 2층의 일부, 그리고 남아있는 건축부재들을 최대한 보존해서 복원해서 현재에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화재로 인해 오스만 제국에 의해 회반죽으로 덮여있었던 모자이크가 드러나게 됐다고 한다.
현재 모습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7세기에 지어진 성당을 기본으로 한다.
구 동로마 제국령, 그리고 현대 그리스의 정교회 성당들은 몇몇 경우를 빼면 그 원형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정교회 자체가 성당을 개조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신중하고 오스만 제국이 비잔틴 성당들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할 때에도 미나렛을 새로 추가하는 것을 제외하면 건물의 구조 자체를 없애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물론 개조될때 내부에 있던 모자이크, 성화들은 예외적인 몇몇 곳을 제외하면 대체로 전해지지 않는 편이다.)
성당 지하에는 고대 로마시대 목욕탕 유적과 카타콤베가 있다고 하는데 내가 갔을땐 운영시간이 끝나서 들어갈 수 없었다.
대화재로 전소된 성당의 모습이다.
로마의 산파올로 푸오리 데 무라 대성전도 화마를 입었을때 이렇게 열주와 앱스만 남고 전소됐었다...
성당 앞 광장의 바닥은 본래 유대인 묘지의 석재로 지은 것이다.
한때는 유대인 인구가 테살로니키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유대교를 믿는 그리스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치 독일의 점령기간동안 95%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학살당했다고 한다.
이때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유대인들의 묘지를 파괴하고 그 곳에 있던 비석들을 반출해서 망자들의 이름을 지우고 사용한 것이다.
현재의 테살로니키 아리스토텔레스 대학교가 위치한 자리에 유대인 묘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유대인 묘지였다고 한다.
그런 역사적인 배경때문에 유대인들도 이 곳을 찾는다고 한다.
조상들의 묘비 위를 걸으면서 말이다.
성당의 서쪽 측면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성당의 후면부로 여기도 다른 고대 성당들처럼 플라잉 버트레스 역할을 하는 버팀목이 설치되어 있었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정말 교과서적인 정통 바실리카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917년 대화재의 흔적을 알 수 있는데 1층의 아치가 군데 군데 빠져있고 2층 기둥은 새로 교체된 것이다.
일부러 새로 지은 부분은 누구나 보면 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당의 증축을 치적삼아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려고 하기보다 초기 성당의 원형을 지켜내려고 노력한 사제들에 의해 오늘날 사람들은 1500년전에 지어진 성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있는 성당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테살로니키의 '비잔틴 문화 박물관'에 있던 아요스 디미트리오스 성당에 있던 아치와 열주이다.
비잔틴 문화 박물관에 대해선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겠지만 꼭 방문해볼 필요가 있는 곳이다.
앱스에서 테오토코스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었다.
천사들이 성모님과 아기 예수를 축복하고 있다.
하얀색으로 회칠한 부분이 전소되고 새로 지은 부분이다.
그 아랫부분에 정교하게 원형의 아치가 결합돼있는데 복원작업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복원작업이 1917년에서 1949년까지 30년이 넘게 걸렸다는데 얼마나 신중하게 복원이 이뤄졌는지 알 수 있다.
성 디미트리오스의 유해라고 한다.
많진 않지만 성화가 곳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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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8 터키 - 이스탄불: 이스탄불 해군 박물관, 돌마바흐체 궁전
아침에 일어나서 일디즈 궁전을 가기위해 트램을 타고 버스를 갈아탔다.
가는 도중에 내려서 몰라첼레비 사원을 사진에 담았다.
1584년에 미마르 시난에 의해 건축되었다.
일디즈 궁전을 방문했지만 군인들이 제지를 했다.
아쉽게도 복원을 위해 무기한 폐쇄상태였다.
구글에서도 폐쇄라는 표시가 없었는데 이런 일은 외국을 여행하다가 자주 벌어진다.
자난에서 연락을 해서 일디즈 궁전이 폐쇄중이라고하고 베식타쉬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디즈 궁전에 가는 길에 있는 일디즈 하미디예 사원이다.
술탄 메흐멧 2세의 동상이 있었다.
자난을 만나서 해군 박물관으로 갔다.
이건 자난이 계획해서 방문한 곳인데 아주 유익한 곳이었다.
이스탄불 해군 박물관의 역사는 18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14척의 황실 카이크선과
터키 공화국 초기에 사용된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3척의 배가 보존되어 있다.
후기 오스만 제국 문화의 화려함을 느끼려면 근처에 있는 돌마바흐체 궁전과 함께
이 곳을 방문하면 아주 좋을 것 같다.
전시관으로 이동하는 초입에 터키의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의 사진과
그가 쓰던 작은 선박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배는 이따 말미에 다룰 것이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는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 현대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 인물이다.
아타투르크라는 이름은 '터키인들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그의 이미지는 대체로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쓰러져가는 오스만제국의 장군으로 유럽의 군대를 격퇴하고 아나톨리아를 사수한 전쟁영웅의
이미지일것이고 두 번째는 서구화와 세속주의 정착을 성공시킨 개혁가 일것이다.
안타깝게도 권위주의 이슬람 정당(AKP)이 집권하면서 첫 번째 이미지만이 강조되고 있다.
가령 AKP를 지지하는 터키인들은 집이나 가게에 아타투르크의 군인시절 초상화를 더 선호한다.
오스만 황실의 카이크선으로 주로 황실 이벤트나 황제의 일일여행에 사용됐다고 한다.
선미에 장식된 음각이 너무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 곳의 배들은 열, 습도, 빛에 매우 민감하다고 한다.
100년의 수명이 넘은 이 배들이 뒤틀리거나 망가짐없이 원형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자와 복원사들의 노력했을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압둘메지트 황제의 가족들이 사용하던 카이크선이다.
독일의 빌헬름 2세와 황후가 1889년 이스탄불에 상륙할 때 이 배를 이용하여 해안가에 내렸다고 한다.
셀주크 스타일에 영향받은 기하학적 형태의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대형 선체의 경우 이렇게 따로 분리하여 보존하였다.
박물관은 마르마라해 바로 앞에 지어졌는데 해군 박물관으로서 최고의 위치임에 틀림없다.
오스만 제국의 해군 문장이 전시되 있었다.
보존을 너무 잘해놔서 지금도 바다에서 사용이 가능할 것 같다.
황제의 키오스크가 카이크선 위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화려함 때문에 배 자체가
바다위에 떠있는 작은 궁전 같았다.
키오스크에 있는 황제의 옥좌이다.
압둘아지즈 황제가 사용했던 카리크 선이다.
오스만 제국의 문장이 키오스크 중앙에 장식되어 있다.
선미에는 독수리상이 설치되어 있는데 동로마 제국의 상징도 독수리상이어서 흥미로웠다.
실제로 오스만 제국이 로마 황제를 자칭하거나 제국 편제에서 동로마 제국을 참고했는데
그럼 당시 아나톨리아 밖의 아랍 민족들에게 이 제국이 어떻게 보였을지 궁금하다.
정통 칼리파 국가들처럼 보였을지 아니면 종교적으로 느슨한 유럽의 제국처럼 보였을지 궁금해진다.
해군 박물관엔 14척의 황실 선박이 있는데 최적의 환경에서 보존하기 위해 2009년에
지금의 위치에 박물관을 새로 지었고 기존의 콜렉션도 복원 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이 배가 만들어진 시대인 19세기 중반에 오스만 제국의 국력은 약해지는데 반해
예술적인 측면에선 경지에 이르렀던 것 같다.
당시 공예품을 비교하면 오스만 제국이 유럽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문화적인 역량은
대단했다.
위에서 언급한 아타투르크 대통령이 사용했던 요트였던 MV Savarona의 구명선으로 쓰이던
보트가 전시되어 있었다.
MV Savarona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건조한 대형 요트로 원래 소유자는 다른 사람이었으나
말년의 병이 든 아타투르크 대통령이 바다공기가 건강회복에 좋다는 주치의의 조언을 듣고
1938년에 구입했다고 한다.
그의 바램과 달리 요트는 두 달도 채 사용되지 못하고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소유자도 바뀌고
여러 용도로 전용되다 지금에 이른다.
아타투르크 대통령이 플로리아(미국 플로리다 아님)의 여름별장에서 사용한 보트라고 한다.
마호가니 목재로 건조되었다.
베식타쉬에 가서 도너 케밥을 먹었는데 서울 이태원에서 먹던 케밥보다 훨씬 맛있다.
Sebil Cafe라는 곳으로 오스만 제국 시대 유서깊은 건축물을 카페로 개조한 곳이었다.
오늘 방문할 돌마바흐체 궁전이다.
돌마바흐체 궁전 입장료는 90리라(한화 13000원)로 상당히 비싸다.
하지만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제공되고 정말 완벽한 상태로 관리되고 있으니 방문하시길 권하고 싶다.
안가면 후회해서 나중에 또 이스탄불에 와야할 수도 있다...
정원의 배치가 정말 아름답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1856년에 지어진 서양식 궁전으로 로코코,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까지
여러 서양 건축양식이 절충되었다.
건축가는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건축가인 가라벳 발얀에 의해 지어졌다.
당시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하면서 아르메니아인들이 대거 등용되었다.
시간이 흘러 1915년엔 터키인들과 아르메니아인들이 도저히 같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적대하게 되고 끔찍한 참극으로 이어지지만 어쨌든 이 시대는 그랬다.
돌마바흐체 궁전도 바다 앞에 지어졌다.
때문에 압둘 하미트 2세는 적성국가들의 해상공격을 염려하여 육지쪽에 있는 일디즈 궁전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정적 탄압은 잘하던 사람이 외적은 또 무서웠나보다;;;
이후 돌마바흐체 궁전은 33년 동안 국가행사 용도로 1년에 한 두번 사용됐다고 한다.
터키공화국이 건국된 후엔 아타투르크 대통령이 하렘에 있는 방 하나를 침실로 쓰게 된다.
돌마바흐체 궁전 내부는 사진촬영이 일절 금지돼있다.
이후 내부사진은 전부 퍼온사진으로 대체한다.
실내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오스만제국 황제가 부활한다면 이 곳을 보고 "오랜만에 와보니까 원래보다 약간 낡았네?"
라고 할만한 컨디션 이었다.
그만큼 관리도 매우 엄격하다.
오디오 가이드로 거의 모든 방에 대해 해설을 들을 수 있으며 관람시간도 꽤 오래 걸린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285개의 방과 43개의 홀이 있다고 한다.
돌마바흐체 궁전에 있는 하맘(목욕탕)인데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다.
이 정교한 조각을 보라!
돌마바흐체 궁전의 하렘 건물이다.
하렘은 입장료를 별도로 받는데 역시 방문안하면 나중에 후회할 수 있으니 가보길 권하고 싶다.
아무래도 술탄의 가족들이 생활하던 곳이니 세람르크에 비해 인테리어도 컬러풀하고 아름답다.
내부촬영이 불가한 관계로 이 사진도 퍼왔다.
하렘은 옛날 서양에서 가지고 있던 자유분방한 환상과는 달리 실제로는 공적인 공간이었다고 한다.
세람르크도 마찬가지지만 여기도 정말 실밥 하나도 허술하게 관리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다.
제국의 역량을 쏟아부어 만든 훌륭한 건축물이지만 그냥 방치된다면 3년도 안되서 여기저기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실제론 주기적으로 채색도 다시 해주고 아주 정교한 보수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 같은 관광객들은
그런 머리아픈 작업들에 대해 잊고 건축됐을 당시로 타임슬립한 것 같은 기분 속에서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다.
하렘에선 아타투르크 대통령이 사용한 방을 볼 수 있었다.
이 방은 본래 오스만 제국 압둘메지드 황제의 겨울 침실로 사용된 곳이었고
터키 공화국 건국 후엔 앞서 언급했듯이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침실로 사용되었다.
위에서 설명한 요트에서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용태가 악화되고 이 곳으로 돌아와서 투병생활을 하다가
57세의 나이로 서거한 곳이다.
이 방의 시계는 그가 사망한 시간인 9시 5분에 멈춰져있다.
내 옆에는 히잡을 쓴 나이지긋한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슬픈 표정으로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침대를 보면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 장면이 아직도 기억나는 이유는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세속화 정책으로 히잡을 쓴 여성은
터키 사회내에서 소수가 되었는데(이슬람주의 정권으로 바뀌면서 지금은 반대가 됨)
이 아주머니는 아타투르크 대통령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없는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의 마음은 내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그 아주머니의 표정을 떠올리면 그 세대의 터키인들은 그런 것을 초월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여행을 할때도 즐거웠지만 요즘같은 때서야 더욱 느낀다.
나는 정말 행복했음을...
자난과 다시 베식타쉬로 가서 카페에 들렀다.
사진에 보이는건 내 카메라가 아니라 자난의 카메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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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7 Germany - Frankfurt am Main(프랑크푸르트)
그 전날 이틀을 야간버스에서 해결한지라 이날은 충분히 자고 일어났다.
하이델베르크를 갈까 하다가 너무 피곤해서 그냥 프랑크푸르트를 둘러보기로 했다.
독일은 밥값이 너무 비싼것같아 걍 아침에 호스텔에서 주는 조식으로 버티기로 했다.
그 다음날도 호스텔 조식으로 버텼다.
호스텔에서 커피는 유료라서 2유로를 주고 사먹었다.
유로타워인데 여기서 이 사진을 찍은 직후에 일본인 노부부의 사진을 찍어줬던게 기억난다.
20세기초 건물로 카페 겸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에센하이머탑으로 1428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며 직접 올라가보진 못했다.
사실 여행을 다닐때 서점에서 책을 사는건 정말 꺼려지는 일이다.
책하나의 무게가 고스란히 어깨에 스트레스로 가중되기 때문에...
그럼에도 관광지에서 파는 역사 관련 서적은 나중에 굳이 보지않더라도 꼭 사고싶게 만든다 ㅎㅎㅎ
장자크 파울교회라는 곳으로 1833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독일 제1회 국민회의가 열린 곳으로 독일 민주주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지금 건물은 2차대전때 파괴된후 재건된 것이다.
지금은 교회가 아니고 전시관으로 사용중인데 안에서 독일인 단체관광객들이 가이드 투어를 하고 있었다.
내부는 크게 볼건 없었다.
예배당 자리에 주깃발이 놓여져 있었는데 이미 윤수랑 코블렌츠에서 주깃발은 봤기때문에 감동은 덜했다ㅋㅋ
프랑크푸르트 시청사로 1405년부터 600년간 시청으로 사용중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황제가 피로연을 열었던 방이 있다고 하는데 들어가보진 않았다.
뢰머광장인데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로마인들이 정착한 곳이라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터키에서 동로마제국 그리스인들에 대해 '룸'이라고 불렀던게 생각났다.
뢰머광장 측면에 있는 신축건물들이었는데 기존 건물과 같은 형태로 지어졌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에 도착했다.
1867년에 한번 불타고 1900년에 다시 지었지만 2차대전때 영국공군에 의해 내부가 완전히 타버려 1990년대에 복원했기 때문에 들어가면 새건물티가 많이 난다.
1562년부터 1792년까지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관식이 열렸던 역사적인 공간이다.
신성로마제국이 로마제국을 계승하는지에 대해선 부정적이지만 요샌 또 너무 신성로마제국이 까이는 분위기가 아닌가 싶다.
프랑크푸르트 역사박물관인데 돈아낄려고 안들어갔는데 나중에 블로그를보니 꽤 유익한 곳인것 같다.
여러분 프랑크푸르트 역사박물관은 꼭 방문하셔서 저처럼 괜한 후회하지마시기 바랍니다😇
마인강변에서 노인들이 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나도 이곳의 일부가 되고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드라이퀴니히교회라는 곳인데 카톨릭 교회인줄알았는데 개신교회였다.
원랜 당연히 가톨릭 교회로 지어졌고 1340년에 동방박사에게 봉헌된 교회이다.
교회 직원분인지 봉사하시는 분인지 중년의 여성분이 친절하게 환영해주어 잠시 대화를 나눴다.
나는 외국에가면 한국사람인걸 일부러 드러내는 편인데 한국에선 무교가 가장 많지만 종교가 있는 사람중에선 그리스도교가 제일 많다고 이야기했다.
한국에선 개신교건물하면 대규모 예배가 행해지는 메가처치이거나 걍 빌딩에 세들어 있는 곳이 많아서 교회건물은 그냥 거드는 느낌인데 독일은 개신교의 탄생지이다보니 이런 오래된 교회들도 있다는게 신기했다.
이 교회의 메리트는 이렇게 2층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직원분이 2층에도 올라가보라고 추천해주셔서 올라가보았다.
고맙고 좋은 마음만 남기고 직원분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교회문을 나섰다.
야경사진을 찍기위해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갔다.
사실 이 사진은 의도치 않게 찍힌것인데 두 남자가 역앞에 서있는게 느낌이 좋아 올려보았다.
아까 낮에 지나쳤던 아이젤너 다리인데 밤에 보니 정말 아름다웠다.
밤이다보니 혹시 누가 시비라도 걸지않을까 경계하면서 다녔는데 실제론 아주 안전한 곳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담임선생님이 오스트리아를 여행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모차르트 초콜릿이란게 있다고 한 3번정도 들었던것 같다. 그러다가 꼭 말기에 너네들은 사먹을 기회가 없을거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하필 또 이때 초콜릿이 안땡겨서 기회는 있었지만 못먹고 말았다.
어느덧 하루도 끝나가고 있었다.
내일은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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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밤새 9시간을 달려 프랑스 파리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보르도에서 파리로 갈때는 만석이어서 정말 고역이었는데 다행히 프랑크푸르트로 갈땐
사람이 많지않아 편안하게 갔던것 같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근처에 내려주었는데 비도 내리고 날씨가 좋지 않았다.
프랑스랑은 또 분위기가 달랐는데 좀 더 정돈된 느낌이었던것 같다.
독일이 역시 유럽의 대장주라는 느낌이 들었다ㅋㅋㅋ
역에서 1,2시간 시간을 때우다가 예약했던 프랑크푸르트 호스텔로 짐을 맡기러 갔는데 분위기가 꽤나 활발했다.
다시 프랑크푸르트중앙역으로 가서 표를 구입했는데 표발권기에서 구입하려다가 포기하고 직접 표를 살수있는
창구가 있어 그 곳에서 구매하였다.
이탈리아는 일정이 좀 되다보니 미리 공부를 해서 열차 클래스랑 몇가지를 숙지해갔는데 독일은 공부를 안해가서
가면서도 플랫폼은 맞는지 계속 불안해서 현지인들에게 계속 물어보았는데 아주 친절했고 다른사람을 도와주려는 경향이 있는 것같았다.
독일도 좋은 사람 나쁜사람 있겠지만 나는 좋은 사람들만 만났던 것 같다.
이날은 예전에 같이 음악을 했던 윤수를 코블렌츠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윤수는 배울 점도 많고 많은 추억이 있는 동생이다.
한국에 있을땐 삼다수사먹는 것도 아까워서 편의점 자체브랜드 500원짜리를 먹었는데
여긴 에비앙이 제일싸서 에비앙을 마셨다.
물을 먹고나서 전날 버스에서 무리를 해서그런지 깜빡 잠들어서 중간에 갈아타야하는데 한정거장을 더갔다.
안타깝게도 코블렌츠행 티켓을 새로 사서 갔는데 돈이 4만원정도가 더 나왔던것 같다.
삽질도 여행의 일부인셈치고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가서 침착하게 코블렌츠행 열차를 탔다.
결국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
코블렌츠역에 도착하니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윤수를 볼 수 있었다.
예전엔 윤수네 집에서 우리집까지 버스로 1시간 거리였는데 지금은 비행기타고 기차까지 타야한다😊
먼저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해서 윤수가 알아본 레스토랑으로 갔다.
독일에 와서 처음먹는 음식이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맥주는 여기 레스토랑 시그니처 맥주였는데 여태까지 먹은 맥주중에 제일 맛있었던것 같다 ㅠㅠ
문득 나중에 한국돌아가서 4개 만원짜리 수입맥주가 맛이 없게 느껴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윤수에게 여기가 독일인게 실감이 안나고 이태원의 서양음식점에서 서프라이즈 출연배우들과
밥을 먹는것 같다고 농담을 했다.
참고로 윤수가 계산을 했다. 독일은 밥값도 비싼데 너무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새벽엔 비가 내렸지만 다행히 날씨가 아주 좋았다.
유럽은 원래 비가 자주오고 날씨가 변덕스럽다는데 확실히 스페인, 프랑스, 독일에 있을땐 수시로 비가 왔던것 같다.
선제후 궁전으로 1784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지붕부분만 2차대전때 폭격으로 파괴되었는데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원랜 로마제국에서 온 장인들의 정착지가 발굴되었다고 하는데 따로 설명은 나와있지 않았다.
지금은 관공서로 쓰이는데 아쉽게도 내부입장이 안되었는데 가끔 행사가 있을때만 입장 가능하다고 한다.
독일 건축물들을 보고있으면 일제시대 건물과도 유사점이 보이는데 일본 근대건물들이
영국과 독일 건축양식을 가장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모더니즘 건물이 보였는데 담백해서 찍어봤다.
도시의 랜드마크인 도이치 에크(Deutsches Eck)에 도착했다.
빌헬름1세의 청동기마상의 포스가 어마무시했다.
기마상은 2차대전때 박살났고 다시 세운것이라고 한다.
청동판에 새겨져있는 독일어 글귀를 윤수가 번역해줬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애국심을 고취시켜서
전쟁에서 적을 향해 개돌어택을 감행할만한 글귀로 가득차 있었다. 까짓거 이 한목숨
바로 앞에는 독일의 주깃발들이 모여있었다.
라인강과 모젤강이 만나는 곳이라고 하는데 깃발에 정신이 빼앗겨 그리 신경은 쓰지 못했던 것 같다.
강건너편에 에린브라이트슈타인(Ehrenbreitstein) 요새가 보였다.
요새까지 케이블카로 이어져 있는 아쉽게도 운행하지 않는 날이어서 갈 수가 없었다.
베를린 장벽을 떼어왔다고 하는데 청계천에서 본 베를린 장벽이 떠올랐다.
1953년 6월 17일은 동독 노동자봉기가 벌어진 날이다.
발두윈 다리라는 곳인데 1429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동로마제국이 망하기도 전이군 ;;;
중국식당 이름이 아시아를 전부 통합할것같은 포스가 느껴져서 찍어봤다.
바로 앞에 Liebfrauenkirche(성모교회) 첨탑중 하나가 보였다.
12세기에 지어졌으며 여러번의 개축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도 2차대전때 공습때문에 첨탑 상부와 지붕이 불타버렸는데 후에 복원했다고 한다.
다음 장소인 미텔라인(Mittelrhein) 미술관에 도착했다.
여기선 DSLR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려면 추가로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고해서 스마트폰으로만 사진을 찍었다.
중세의 성화, 조각, 현대미술까지 콜렉션이 아주 다양했다.
윤수가 현대미술의 결정체라고했던 그 작품이다 ;;;ㅋㅋㅋㅋ
미술관을 나오니 어느덧 어두워졌고 헤어져야할 시간이 되었다.
나야 여행으로 온거지만 윤수에겐 이 곳이 삶의 터전인데 집에서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만나러 와줘서 너무 고맙기만 하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로 다시 기차를 타고 가는데 이 기차가 제대로 가는게 맞는지 걱정이 엄습했다 ㅠㅠ
기차안에서 긴장된 표정을 하고 있으니 다른 현지인 승객이 미소를 띄우면서 '나한테 뭐 물어볼거없어??'하는
표정을 하고있어서 이 열차 프랑크푸르트로 제대로 가고있는게 맞냐고 물어봤는데 그렇다고 한다 ㅋㅋㅋ
올때는 프랑크푸르트역에 잘 도착해서 호스텔에 가서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윤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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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버스를 밤새 달려 파리에 도착했다.
공중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세수까지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배낭을 맡길까 했지만 거의 돈 만원이 들어서 그냥 메고 다니기로했다.
이로써 도시세도 안내고 돈을 많이 아낄 수가 있었다.
예전에 소니아가 여기 사진을 찍은적이 있는데 여기 도착하자마자 그 사진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나나 소니아나 둘 다 여행을 좋아하다보니 방문한 곳들이 많이 겹친다.
여행도사 소니아... 여행가면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움직이는 소니아...😂😂
길거리를 다니는데 밥이라도 먹어볼까 했는데 가격이 너무 비쌌다.
여행 전에 정보를 수집할때 알고있었던 거긴했지만 비싸도 너무 비쌌던 것 같다.
생 에티엥 뒤몽 교회인데 그냥 지나쳤다.
여행책에서 봤던 팡테옹이 눈에 들어왔다.
로마의 판테온을 참고한 건물로 우리나라 국립묘지같은 곳이다.
입장료가 있어서 역시 들어가지 않았다.
파리 5구청이라는데 그냥 그랬다.
클뤼니 중세박물관인데 고대로마시대 목욕탕 유적위에 지어졌다고 한다.
로마시대보단 중세박물관의 성격이 강해서 미련없이 패스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서양인들이 잠시 고민하는 듯하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 나중에 후회할 것 같으면 무조건 가봐야한다^^
이때부터 계속 비가왔다.
나중엔 사진촬영이 어려움은 물론 카메라까지 걱정될 정도였다.
이 당시 찍은 사진은 물방울 흔적이 곳곳에 있다.
어쨌든 지나가는데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였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역시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아쉽게도 작년에 노트르담대성당이 불탔다는 기사를 봤다.
파리의 민사법원 건물이다.
이건 무료입장이 가능하다고해서 짐체크를 한뒤 들어갈 수 있었다.
이쪽으로 이동하다가 법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바람때문에 법복 모자가 바닥에 떨어져서 내가 재빨리 줏어주었다.
센 강을 지나갔는데 날씨가 너무 안좋다보니 여행사진에서 보던 정취가 느껴지지 않았다.
파리는 거의 영국날씨 비슷하다고 본 것 같은데 내가 갔을땐 확실히 그랬다.
비오면 비자체보다 신발이 젖는게 제일 싫다.
그래서 난 외국으로 여행갈땐 일부러 낡은 신발을 신고가는 편이다.
거기서 비가오면 그 신발 버리고 현지에서 새 신발 사서 신고 다닐려고...
지나가다가 고대 로마시대 유적이 나와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보았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폐쇄되어있었는데 왜 이런데를 그냥 놔뒀을까?
로마유적은 어디를 가도 로마제국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 같다. 고대로마때는 말이야..
비가 너무 심하게 내려서 결국 밥이나 먹기위해 맥도날드로 들어갔다.
가격은 거의 만원정도 했던것 같은데 퀄리티는 한국 맥도날드 쇠퇴기 때의 빅맥과 같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햄버거를 먹고 자리에 앉아 미적거리다가 밖에 비가오는지 창문을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엉뚱한 사람이랑 잠시 눈이 마주쳤다.
히잡을 쓴 여자였는데 인구구성상 아마도 알제리나 북아프리카계 이민자일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우스꽝스럽게도 미소를 짓길래 나도 웃어주었다. 시덥지 않은 일이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루브르 박물관인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어느덧 날씨가 어두워졌다. 그래도 파리에 왔으니 기념엽서한장을 사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콩코드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를 보게 되었다.
원래는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 있었다고 한다.
여러분 시간이 있을때 많이 여행하세요(새삼스러움)
프랑스 군사 박물관이다. 건륭제의 갑옷을 소장하고 있다던.....
여긴 솔직히 의무감때문에 방문해봤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중 하나이니....
개선문으로 당일치기 파리여행은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이번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이동을 위해 다시 Flix 야간버스를 타러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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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뿐이지만 정든 그라나다를 뒤로 하고 마드리드행 버스를 탔다.
그나마 이번엔 오전부터 이동하는거라서 좀 나았다.
그라나다 터미널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산 건데 모양이 카스테라랑 비슷해서 샀는데 맛은 거의 비슷했다.
Bizcocho(비즈코초)라고 불리고 정식 명칭은 Bizcochuelo(비즈코츄엘로)이다.
펠리페 4세의 동상으로 최초의 승마 동상중 하나라고 한다.
이것도 나중엔 여느 역사적인 동상들처럼 박물관에 보존되고 여기에 모조품이 세워지겠지?
마드리드 왕궁인데 시간이 없어 들어가보지 못했다.
산타마리아 라 레알 데 라 알무데나 대성당이다. 이름 한번 길다 😂😂
1993년에 완공됐는데 100년 동안 지었다고 한다.
제대로 들어가서 본 유럽성당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무료이고 기부금 1유로를 받는다. 난 여행이 한참 남아 그냥 기부금 안내고 둘러봤다...
이런 곳은 오래된 건물을 아니지만 도시를 대표하는 종교 건축물로서 한번 쯤은 둘러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당은 지은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제대위에 안치된 알무데나의 성모상은 만들어진지 1000년이 넘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성모상 앞에서 절을 했다.
그래서 나도 줄을 서서 성모상을 알현하고 앞으로 여행 잘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국기를 보니 이탈리아와 관련된 건물인 것 같다.
마드리드가 수도로서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 관광으로 사람 끌어모으는 곳은 아니라서 좀 더 사람사는 느낌이 났던 것 같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런 사진을 보면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텅빈 길거리 풍경이 그려진다.
산 미구엘 시장
까사 데 라 파나데리아
그랑비아 거리인데 1929년에 조성된 거리로 19세기 프랑스 파리를 모방하였다고 한다.
레알 마드리드 공식샵이라는데 축구를 별로 안 좋아해서 그냥 지나쳤다.
레알 팬이라면 꼭 가야할듯...
여기서 운동화를 사기로 결정했다.
젤 싼 신발로 구매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어느덧 빌바오로 다시 떠나야해서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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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 Madrid로 가기위해 Bilbao의 Abando역으로 왔다.
나중에 깨달은 건데 진짜 Spain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하면 기차타기 너무 쉽다.
Spain의 국영철도기업인 Renfe 열차가 도착했다. 내가 탈 기차는 Alvia등급이다.
속도는 220~250km/h인데 쾌적했다.
열차에서 소니아가 챙겨준 하몽을 먹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ㅠㅠ 맛도 일품이다.
Madrid에 내리자마자 버스터미널로 가기위해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어쩔 수 없이 지하철 교통카드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쓸 일이 있겠지~
자 이제 버스를 타고 Madrid에서 Granada로 가야할 차례다.
한국은 5시간안에 다 해결되는데 유럽 왠만한 나라는 2배정도로 보면 되는것 같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커피를 하나사서 땅바닥에 앉아서 마셨다.
버스에서 밤새 뒤척였던 것 같다.
도착하니 6시 반이었다.
야간버스가 숙박비도 아낄 수 있고 이동도 할 수 있어서 좋은데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예약한 호스텔로 가서 체크인을 한뒤 곧바로 Alhambra궁전으로 갔다.
티켓 예매는 한국에서 미리 하고 왔는데 그마저도 미리 예약을 해야했다.
아시아에 있는 유적지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렸던 곳이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꼽자면 히메지성 정도?
여긴 전세계 관광객들이 몰려오는데 그마저도 다 못들어가다니...
풍화된 벽면이 이곳이 오래된 곳임을 말해준다.
알바이신 구역이 보인다.
날씨가 흐렸다가 맑았다가 미친년 널뛰기하듯이 계속 바뀌었다.
카를로스 5세 궁전 입구에 있는 부조인데 전투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2층 회랑에 올라가보았다.
헤네랄리페 정원. 알함브라 궁전의 대미를 장식하는 곳이다.
곳곳에 무슬림 왕조시절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알함브라 궁전을 빠져나와서 알바이신 지구로 가기로 했다.
여기도 산책하기 참 좋은것 같다.
한국사람이야 어딜가나 있지만 규모대비 제일 많았던 곳이 그라나다였던 걸로 기억한다.
Granada의 뷰 맛집인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사진을 남겨봤다.
전망대 옆엔 이슬람사원이 있었다.
이슬람왕조가 스페인을 떠난지 500년만에 지어진 이슬람사원이라는데 위치도 그렇고 스페인정부에서 많은 배려를 해준 것 같았다.
흐렸다가 맑았다가 나중에 저녁땐 비가 계속 내렸다.
이슬람 왕조시대에 세워진 문이라고 한다.
유적에 저런 그래피티 좀 안했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나는 나중에 그리스에서 더 한걸 보게된다.
알바이신을 보면 옛 이슬람 양식이 도시 건축의 기준이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Granada의 매력은 바로 유럽에서 이슬람 문명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 중의 하나라는 것이 아닐까?
(그리스에서도 오스만제국시대의 건축물이 남아있지만 스페인처럼 본토 문화에 스며들지 않았다.
오스만시대 건축물을 관광에서 별로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지도 않고 말이다.)
Granada 대성당인데 입장료를 받아서 밖에서 보는걸로 만족했다.
여행 초기이고 돈을 아껴야지....
잠을 제대로 못잔 상태에서 어느덧 알함브라 궁전과 알바이신구역을 일주하니 몸이 너무 고단해서 일단 숙소로 가서 한시간정도 쉬다가 저녁에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
그러나...............
숙소들어가기전 바로앞에 있는 광장에서 내가 지나가는데 10대 무리가 나를 향해 "니하오우~~" 하면서
익살스럽게 웃고 즐기고 있었다.
씹고 가려다가.... 아니야 이건 싶어서 쫓아가서 따졌더니 영어로 미안하다고 진심어린 태도로 사과를해서 나도 더 뭐라하진않았다.
생김새나 분위기가 나쁜 학생들같진 않아보였는데 인종차별주의자같진 않아보였다.
만약 위험한 애들같았다면 나도 몸을 사렸겠지...
한 10분동안 설교를 했다. 나같이 생긴 사람이 다 중국사람이 아니고 한국사람도 있고 일본사람도 있고 대만사람도 있고 몽골사람도 있다... 먼저 어디서 왔냐고 물어봐야하는게 정상이고.....
주저리 주저리 떠들었지만 어쨌든 나도 이런일은 겪은건 그때가 처음이라 기분이 좋진 않았다.
어차피 피곤했고 멘탈회복도 하려고 숙소로가서 누워서 좀 쉬는데 소니아한텐 얘기안할까하다가 그냥 참다 병될것 같아서 다 이야기했다.
소니아도 한국에서 불쾌한 일을 당하거나하면 다 이야기했기 때문에 힘든건 얘기해야지.....
지금이야 받아칠줄도 알고 하는데 이 땐 정말 기분이 좋지 않더라.
좀 쉬다가 나와서 야경을 촬영해보았다.
저녁이 되니 비가 많이 내려서 신발이 다 젖고 말았다.
이럴때를 대비해서 일부러 오래된 신발을 신고간건데 마드리드에서 운동화를 사야겠다.
그라나다의 야경을 만끽한 후 타파스 가게에 들러서 맥주 한잔과 타파스를 즐겼다.
가격도 저렴하고 맥주도 맛있었다.
이런게 여행의 묘미이고 즐거움이다.
나와서 숙소로 가는 골목으로 지나가는데 술에 취한 남자 한명이 철푸덕하고 넘어졌다.
넘어진 남자는 거구인데 일행인 남자는 상대적으로 왜소해서 내가 도와줘야겠다 싶어서 달려가서 같이 일으켜 세워줬다.
그 남자는 스페인어만 할줄알고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니 말이 안통했는데 손가락으로 따봉을 해서 나도 따봉해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ㅎㅎ
그라나다에서 하루도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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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소니아가 빌바오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제 몇시간뒤면 그라나다를 가기 위해 마드리드행 기차를 타야한다.
짐을 맡겨놓고 도시를 둘러보려고 했지만 관광안내소에서 알려준 짐보관소는 왠일인지
현재 짐을 보관해주지 않는다고하여 결국 배낭을 멘채 이동하게 되었다.
아리아가 극장을 그냥 지나쳤다.
산 니콜라스 성당인데 들어가보진 않았다.
Joan Santuen 성당인데 초기 바로크 건축양식이 참 멋지다.
성 안토니오 성당이다.
입장료가 있어서 들어가보진 못했다.
앞으로 여정이 많이 남아있기도 했고...
Mercado de la Ribera라는 곳으로 기차역인가 했는데 시장이라고 한다.
이땐 빨리빨리 지나치느라 들어가지 않았는데 나중에 그라나다에서 돌아오면서 내부로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1920년대에 지어진 시장인데 10년전에 리모델링을해서 새건물같이 보인다.
이 곳 근처에 오기 전에 다리를 하나 건넜는데 거기서 젊은이 몇명이 엎드린 채로 경찰한테 포박당하는걸 봤다.
나중에 소니아에게 물어보니 빌바오가 속해있는 바스크 지역의 분리독립 지지세력일 것이라고 했다.
바스크 분리독립세력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해보도록 하겠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발견했는데 안으론 들어가지 않았다.
이 건물 하나로 빌바오가 오래된 도시에서 젊은 도시로 이미지 변화에 성공했다는데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도 건축당시엔 같은 의도였을 것이다.
잠실야구장을 철거하고 건축된 동대문 DDP도 같은 취지로 지어졌을텐데 왜 난 별로 마음에 안 들까?
잠실야구장도 십수년내로 철거할 것으로 보이는 한국에선 건축물은 소모품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이 건물은 일제시대 서양식 건물과 너무 흡사해서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얼핏보면 일본의 건축가 타츠노 킨고가 만든 것같은 건물이다.
붉은 벽돌 성애자 타츠노 박사님....
Metropolitan Isozaki라는 건물로 스포츠센터라고 한다.
이전에 지어진 건물을 파사디즘 형식으로 남겨둔것 같은데 이런 방식을 까는 사람도 있겠지만 도시재생을 위한 현실적인 타협이라고 봐야 할 것같다. 뭐 우리나란 파사디즘으로 남겨놓을 건물들도 별로 없지 않은가.
유럽은 날씨가 변덕져서 그렇지 미세먼지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빌바오 미술관인데 수준 높은 미술품들이 꽤 많다고 한다.
빌바오 시청건물인데 역시 바쁜 몸인 관계로 안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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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9 Spain - Burgos(부르고스)
상하이 푸동공항을 떠나서 파리 샤를드골 공항을 경유하여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위탁 수화물을 찾고보니 스페인에서는 입국심사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당시 쉥겐조약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였음)
혹시 불법입국이 되는지 걱정되서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파리에서는 입국심사를 했지만 이곳 스페인에선 입국심사를
거치지 않았는데 괜찮냐고 물어보니 안내원이 파리에서 이미 유럽에 들어왔기 때문에 할 필요가 없다고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속으로 바보아니냐고 했을듯 ㅋㅋ
장거리 비행탓에 머리카락이 떡지고 초췌하여 공항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세수까지 마쳤다.
이어서 면도를 하려고 1회용 면도기를 꺼내는데 플라스틱 커버를 급히 떼다가 면도날에 손이 상당히 깊게 베어 피가
줄줄 났다. 거기다가 면도하다 상처나서 피 자국 남음 망함 ㅋ
지하에 있는 의무실로 가서 밴드에이드를 부탁하니 담당직원이 친절하게 여분까지 챙겨주었다.
이제 펜팔친구인 소니아를 만나러 빌바오로 가기위해 버스를 타러 가야한다.
새벽 3시에 빌바오로 떠날 버스가 도착했다. 무엇보다 공항에서 바로 빌바오까지 연결되니 좋았다.
사진에 보이는 ALSA버스는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있는 고속버스회사이다.
참고로 다른 버스회사에선 와이파이가 됐다 안됐다하고 내 인내심을 시험했는데 ALSA가 가장 만족스러웠던것 같다.
4시간 정도를 달리는 동안 잠을 자야.....하는데 비행기에서 이미 잠을 충분히 잤고 여행에 대한 두근거림에 1시간 남짓밖에 못잤다-_-;;;
빌바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소니아가 마중 나와있었다.
소니아를 알게된 것은 2014년, 언어교환 어플에서 내가 사는 동네(관광지 아님) 사진을 올려서 신기하고 반가워서 메세지를 보냈던게 인연이 되어 친구가 되었다.
빌바오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1시간 거리에 있는 Burgos주로 이동했다.
Burgos주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기운 좀 차리라고 까페로 데려가 주었다.
에스프레소를 한 잔하고 밖에 나오니 차가운 공기가 너무 좋았다.
그 때 찍은 사진이 바로 위의 사진이다.
먼저 에스피노사 데 로스 몬테로스 라는 곳에 도착했다.
사진에 나온 이글레시아 데 산타 세실리아라는 성당앞엔 과일 노점이 열려 있었는데 주인 아저씨가 영어를 잘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남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대화를 재개했다는 뉴스를 봤다고 했다.
소니아가 말하길 이 동네에서 영어 잘하는 사람 거의 찾아보기 힘든데 자기도 놀랐다고 한다.
참고로 위의 성당은 1510년에 완공되었다.
이 곳에선 동양인이 아예 0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쪽 아니면 이 쪽은 완전 로컬이다.
소니아가 자기 친구가 운영하는 바에 데려가주었다. 미리 외워둔 스페인어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스페인 사람들이 외향적이고 활발하다지만 소니아가 자기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해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바에서 나와서 다시 차를 타고 벨라스코 탑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소니아가 이 요새는 사유지로서 에스피노사를 지배하던 영주가문 후손들의 소유라고 설명해 주었다.
내부로 들어가 보겠다.
탑 내부는 모두 제거된 상태였다. 보다시피 2층과 3층이 있었다는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스페인 문화재 중에 레드리스트(보존이 시급)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예전에 소니아가 스페인 북부는 남부랑 상당히 분위기가 다르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외국인들이 알고있는 정열적이고 유쾌한 스페인의 이미지는 남부의 이미지라고....
스페인 북부에 와보니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전문가나 직접 방문한 사람이 아니고선 이 사진을 보고 스페인이라고 할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벨라스코 궁전으로 17세기 르네상스 형식의 건축물이다.
Casona del General Marcide라는 곳으로 Don Manuel Marcide이란 장군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소니아가 어렸을땐 장군의 가족들이 집을 출입하는걸 흔히 볼수 있었다고 하는데 열쇠구멍으로 정원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똑같이 따라해봤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채 스페인에 왔더라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었을까? 그저 고맙기만 했다.
예전에 스페인 고성들 가격을 검색해보니 제일 싼게 20억원에서 30억원 사이였던걸로 기억한다.
스페인 북부다운 척박한 이미지가 잘 어울리는 교회다.
Valles Pasiegos로 이동했다. 이곳은 Pasiegos의 칸타브리안인들에 의해 옛 방식으로 목축업이 이뤄진다고 한다. 아쉽게도 겨울이라 그런지 원주민들 모습은 보지 못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중에 말들이 차를 가로막았다. 주인도 없고 자기들끼리 어디로 가는걸까?
근처 식당을 찾았다. 여기도 로컬이었는데 내가 들어가자 동네 주민들이 좀 놀란 눈치였다. 외국인이 여길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표정들이었다. 식전빵이 나왔는데 한국에선 어디서 파는지 몰라 아쉽다.
Calamaritos fritos라는 음식인데 꼴뚜기 튀김이다.
Fabada라는 스프인데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을 것 같다.
이 모두 2만원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정신없이 먹부림을 달렸지만 양이 너무 많아서 두 사람이 다 먹지 못했다.
거기다가 와인까지 나왔는데 그 또한 다 못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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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7 China - Shanghai(상하이)
2018년초에 난생 처음 유럽여행을 계획하게 된 이유는 더 늦기전에 유럽을 한번 가봐야 한다는 단순한 동기때문이었다.
그때까지 주로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만 여러 차례 여행했으니 유럽은 잘 알지도 못하고 또 가서 얼마나 헤맬까 하는 걱정이 많았다.
인천→상하이→파리→마드리드의 일정속에서 상하이에서 저녁시간부터 그 다음날 아침까지 레이오버를 할 수 있었다.
우선 예약한 호스텔에 가서 짐을 풀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짐을 풀고 카메라만 들고 난징동루로 나왔는데 날씨는 비도오고 아주 안 좋았다
그래도 따로 갈려면 비자 수속비 7만원이 더 드니까 기쁘게 여행하자는 마음으로 와이탄으로 향했다.
영국과 미국 조계지 시대에 지어진 근대 건물들을 보고 그 규모에 감탄밖에 나오질 않았다.
인천 개항장 거리나 군산 근대거리는 물론이고 일본에도 이와같은 규모의 근대건축물군은 찾아보기 힘들다.
와이탄의 근대건축물들은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아쉽게도 동방명주탑은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비도 계속 와서 카메라가 걱정되어 다음을 기약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크리스티 경매장의 상하이지점이다.
와이탄 앞쪽의 건물들뿐만 아니라 뒤쪽에도 근대건물들이 아주 많았다.
에어조던 스토어를 보면서 몇년전에 있었던 마이클 조던과 중국 차오단스포츠의 법적 분쟁이 떠올랐다.
남아있는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상하이를 둘러보기위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호스텔을 나왔다.
화려하진 않지만 이 건물도 근대의 세례를 받은 모습이다.
번드 반대편의 지역들은 주거건물로 지어진 근대건물군이 많았다.
한국이나 일본에서야 근대건물이 많지 않으니 그 명칭을 따로 기억하는게 가능하지만 이 곳의 무수한 건물들의 역사를 전부 파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어느덧 공항에 가야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난 비행기를 한번 놓친 적이 있어서 그와 같은 경험은 두번다시 하기 싫은게 사실이다 ㅠㅠ
다 못봐서 아쉽지만 나중에 몇일정도 시간을 내서 상하이를 더 자세히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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