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8 터키 - 이스탄불: 이스탄불 해군 박물관, 돌마바흐체 궁전
아침에 일어나서 일디즈 궁전을 가기위해 트램을 타고 버스를 갈아탔다.
가는 도중에 내려서 몰라첼레비 사원을 사진에 담았다.
1584년에 미마르 시난에 의해 건축되었다.
일디즈 궁전을 방문했지만 군인들이 제지를 했다.
아쉽게도 복원을 위해 무기한 폐쇄상태였다.
구글에서도 폐쇄라는 표시가 없었는데 이런 일은 외국을 여행하다가 자주 벌어진다.
자난에서 연락을 해서 일디즈 궁전이 폐쇄중이라고하고 베식타쉬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디즈 궁전에 가는 길에 있는 일디즈 하미디예 사원이다.
술탄 메흐멧 2세의 동상이 있었다.
자난을 만나서 해군 박물관으로 갔다.
이건 자난이 계획해서 방문한 곳인데 아주 유익한 곳이었다.
이스탄불 해군 박물관의 역사는 18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14척의 황실 카이크선과
터키 공화국 초기에 사용된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3척의 배가 보존되어 있다.
후기 오스만 제국 문화의 화려함을 느끼려면 근처에 있는 돌마바흐체 궁전과 함께
이 곳을 방문하면 아주 좋을 것 같다.
전시관으로 이동하는 초입에 터키의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의 사진과
그가 쓰던 작은 선박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배는 이따 말미에 다룰 것이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는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 현대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 인물이다.
아타투르크라는 이름은 '터키인들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그의 이미지는 대체로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쓰러져가는 오스만제국의 장군으로 유럽의 군대를 격퇴하고 아나톨리아를 사수한 전쟁영웅의
이미지일것이고 두 번째는 서구화와 세속주의 정착을 성공시킨 개혁가 일것이다.
안타깝게도 권위주의 이슬람 정당(AKP)이 집권하면서 첫 번째 이미지만이 강조되고 있다.
가령 AKP를 지지하는 터키인들은 집이나 가게에 아타투르크의 군인시절 초상화를 더 선호한다.
오스만 황실의 카이크선으로 주로 황실 이벤트나 황제의 일일여행에 사용됐다고 한다.
선미에 장식된 음각이 너무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 곳의 배들은 열, 습도, 빛에 매우 민감하다고 한다.
100년의 수명이 넘은 이 배들이 뒤틀리거나 망가짐없이 원형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자와 복원사들의 노력했을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압둘메지트 황제의 가족들이 사용하던 카이크선이다.
독일의 빌헬름 2세와 황후가 1889년 이스탄불에 상륙할 때 이 배를 이용하여 해안가에 내렸다고 한다.
셀주크 스타일에 영향받은 기하학적 형태의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대형 선체의 경우 이렇게 따로 분리하여 보존하였다.
박물관은 마르마라해 바로 앞에 지어졌는데 해군 박물관으로서 최고의 위치임에 틀림없다.
오스만 제국의 해군 문장이 전시되 있었다.
보존을 너무 잘해놔서 지금도 바다에서 사용이 가능할 것 같다.
황제의 키오스크가 카이크선 위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화려함 때문에 배 자체가
바다위에 떠있는 작은 궁전 같았다.
키오스크에 있는 황제의 옥좌이다.
압둘아지즈 황제가 사용했던 카리크 선이다.
오스만 제국의 문장이 키오스크 중앙에 장식되어 있다.
선미에는 독수리상이 설치되어 있는데 동로마 제국의 상징도 독수리상이어서 흥미로웠다.
실제로 오스만 제국이 로마 황제를 자칭하거나 제국 편제에서 동로마 제국을 참고했는데
그럼 당시 아나톨리아 밖의 아랍 민족들에게 이 제국이 어떻게 보였을지 궁금하다.
정통 칼리파 국가들처럼 보였을지 아니면 종교적으로 느슨한 유럽의 제국처럼 보였을지 궁금해진다.
해군 박물관엔 14척의 황실 선박이 있는데 최적의 환경에서 보존하기 위해 2009년에
지금의 위치에 박물관을 새로 지었고 기존의 콜렉션도 복원 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이 배가 만들어진 시대인 19세기 중반에 오스만 제국의 국력은 약해지는데 반해
예술적인 측면에선 경지에 이르렀던 것 같다.
당시 공예품을 비교하면 오스만 제국이 유럽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문화적인 역량은
대단했다.
위에서 언급한 아타투르크 대통령이 사용했던 요트였던 MV Savarona의 구명선으로 쓰이던
보트가 전시되어 있었다.
MV Savarona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건조한 대형 요트로 원래 소유자는 다른 사람이었으나
말년의 병이 든 아타투르크 대통령이 바다공기가 건강회복에 좋다는 주치의의 조언을 듣고
1938년에 구입했다고 한다.
그의 바램과 달리 요트는 두 달도 채 사용되지 못하고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소유자도 바뀌고
여러 용도로 전용되다 지금에 이른다.
아타투르크 대통령이 플로리아(미국 플로리다 아님)의 여름별장에서 사용한 보트라고 한다.
마호가니 목재로 건조되었다.
베식타쉬에 가서 도너 케밥을 먹었는데 서울 이태원에서 먹던 케밥보다 훨씬 맛있다.
Sebil Cafe라는 곳으로 오스만 제국 시대 유서깊은 건축물을 카페로 개조한 곳이었다.
오늘 방문할 돌마바흐체 궁전이다.
돌마바흐체 궁전 입장료는 90리라(한화 13000원)로 상당히 비싸다.
하지만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제공되고 정말 완벽한 상태로 관리되고 있으니 방문하시길 권하고 싶다.
안가면 후회해서 나중에 또 이스탄불에 와야할 수도 있다...
정원의 배치가 정말 아름답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1856년에 지어진 서양식 궁전으로 로코코,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까지
여러 서양 건축양식이 절충되었다.
건축가는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건축가인 가라벳 발얀에 의해 지어졌다.
당시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하면서 아르메니아인들이 대거 등용되었다.
시간이 흘러 1915년엔 터키인들과 아르메니아인들이 도저히 같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적대하게 되고 끔찍한 참극으로 이어지지만 어쨌든 이 시대는 그랬다.
돌마바흐체 궁전도 바다 앞에 지어졌다.
때문에 압둘 하미트 2세는 적성국가들의 해상공격을 염려하여 육지쪽에 있는 일디즈 궁전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정적 탄압은 잘하던 사람이 외적은 또 무서웠나보다;;;
이후 돌마바흐체 궁전은 33년 동안 국가행사 용도로 1년에 한 두번 사용됐다고 한다.
터키공화국이 건국된 후엔 아타투르크 대통령이 하렘에 있는 방 하나를 침실로 쓰게 된다.
돌마바흐체 궁전 내부는 사진촬영이 일절 금지돼있다.
이후 내부사진은 전부 퍼온사진으로 대체한다.
실내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오스만제국 황제가 부활한다면 이 곳을 보고 "오랜만에 와보니까 원래보다 약간 낡았네?"
라고 할만한 컨디션 이었다.
그만큼 관리도 매우 엄격하다.
오디오 가이드로 거의 모든 방에 대해 해설을 들을 수 있으며 관람시간도 꽤 오래 걸린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285개의 방과 43개의 홀이 있다고 한다.
돌마바흐체 궁전에 있는 하맘(목욕탕)인데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다.
이 정교한 조각을 보라!
돌마바흐체 궁전의 하렘 건물이다.
하렘은 입장료를 별도로 받는데 역시 방문안하면 나중에 후회할 수 있으니 가보길 권하고 싶다.
아무래도 술탄의 가족들이 생활하던 곳이니 세람르크에 비해 인테리어도 컬러풀하고 아름답다.
내부촬영이 불가한 관계로 이 사진도 퍼왔다.
하렘은 옛날 서양에서 가지고 있던 자유분방한 환상과는 달리 실제로는 공적인 공간이었다고 한다.
세람르크도 마찬가지지만 여기도 정말 실밥 하나도 허술하게 관리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다.
제국의 역량을 쏟아부어 만든 훌륭한 건축물이지만 그냥 방치된다면 3년도 안되서 여기저기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실제론 주기적으로 채색도 다시 해주고 아주 정교한 보수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 같은 관광객들은
그런 머리아픈 작업들에 대해 잊고 건축됐을 당시로 타임슬립한 것 같은 기분 속에서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다.
하렘에선 아타투르크 대통령이 사용한 방을 볼 수 있었다.
이 방은 본래 오스만 제국 압둘메지드 황제의 겨울 침실로 사용된 곳이었고
터키 공화국 건국 후엔 앞서 언급했듯이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침실로 사용되었다.
위에서 설명한 요트에서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용태가 악화되고 이 곳으로 돌아와서 투병생활을 하다가
57세의 나이로 서거한 곳이다.
이 방의 시계는 그가 사망한 시간인 9시 5분에 멈춰져있다.
내 옆에는 히잡을 쓴 나이지긋한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슬픈 표정으로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침대를 보면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 장면이 아직도 기억나는 이유는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세속화 정책으로 히잡을 쓴 여성은
터키 사회내에서 소수가 되었는데(이슬람주의 정권으로 바뀌면서 지금은 반대가 됨)
이 아주머니는 아타투르크 대통령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없는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의 마음은 내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그 아주머니의 표정을 떠올리면 그 세대의 터키인들은 그런 것을 초월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여행을 할때도 즐거웠지만 요즘같은 때서야 더욱 느낀다.
나는 정말 행복했음을...
자난과 다시 베식타쉬로 가서 카페에 들렀다.
사진에 보이는건 내 카메라가 아니라 자난의 카메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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