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8 그리스 - 테살로니키: 아타투르크 박물관
코모티니에서 테살로니키는 버스로 3시간 정도 걸렸다.
3시간이면 꽤 먼거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유럽여행에서 했던 장거리 이동에 비하면 가까운 것이었다.
비잔틴 문화 애호가인 필자에게 가장 가볼만한 도시 3개를 꼽으라고 한다면 이스탄불, 라벤나, 테살로니키를 꼽고 싶다.
오늘 포스팅할 테살로니키는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 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 내내 쇠락한 적이 없는 역사적인 도시로서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살로니키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된 15곳의 초기 기독교 성당과 비잔티움 유적이 위치해있다.
이 곳이 동로마 제국 초기에 제국의 제 2 도시로서 번영했던 이유는 바로 구 로마(로마)와 신 로마(콘스탄티노플) 중간에 있는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노플과 마찬가지로 이 곳 테살로니키도 황제를 위한 궁전과 요새, 공회당, 성당, 도서관, 각종 편의시설 등 당대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건축물들이 만들어졌다.
이 곳은 오스만 제국 시대에 지어진 목욕탕인 야후디 하맘이다.
테살로니키는 오스만 제국 시대 제2의 도시로 '셀라닉(Selanik)'이란 이름으로 불렸으며 큰 번영을 누렸다.
현재는 전시회 공간으로 비정기적으로 사용 중인데 도시에 남은 오스만 제국 시대 건축물들은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실 외국인 관광객에게 홍보도 안하고 이런식으로 비정기적으로 운영할 경우 더더욱 알길이 없게된다.
나야 소수의 특이한 관광객이니까 인터넷을 찾아서도 가겠지만...
단편적인 인상으론 그리스 정부가 외국인들에게 이런 곳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홍보까진 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규물지네(코모티니의 터키어 명칭), 데데아치(알렉산드로폴리스의 터키어 명칭)는 트라키아지역 역사에 딱히 관심이 없으면 터키 젊은 세대는 잘 모른다.
하지만 터키인들이 셀라닉이라는 도시에 갖는 향수는 어마어마하다.
가령 여행에서 만난 터키인들에게 테살로니키 이름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셀라닉이라는 이름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래 '함자 베이 자미'라는 이름이었던 옛 이슬람사원 이었던 곳이다.
그리스 독립 이후 극장으로 개조되어 '알카자'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다.
1468년에 지어진 것으로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사원이다.
이스탄불에 있는 이슬람 사원으로 쓰이고 있는 옛 비잔티움 성당들을 표기할때 현재 사원 이름을 쓰고 그 다음 원래 이름을 표기했는데 그리스의 경우에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해서 현재 쓰이는 이름인 '알카자 테살로니키(함자 베이 자미)'라고 표기했다.
아쉽게도 복원공사중이라 들어가지 못했다.
숙소를 언덕위에 있는 호스텔로 잡았는데 도시 중앙에서 빨리걸어서 30분이고 버스타기도 애매하고 은근히 빡세다.
이럴거면 그냥 짐이 무겁더라도 백팩메고 하나라도 저녁에 체크인을 할 걸 그랬다.
그래도 이런 것도 경험이니까....
언덕으로 올라가다가 오스만식 분수대가 눈에 들어왔다.
테살로니키엔 이런 분수대가 자주 보였다.
그중엔 지금도 분수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없지만 이 도시에 터키인들이 많이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수대위엔 아랍어로 장식된 동판이 박혀있었을 것이다.
언덕 왼편에 성 테오도레스 성당이 보인다.
1990년에 지어진 성당인데 이탈리아의 성당들이 바실리카→비잔티움→로마네스크→르네상스 양식(고딕, 바로크, 고딕 양식 혼용)으로 발전했다면 그리스는 바실리카에서 비잔티움 양식으로의 발전은 이탈리아와 동일하지만 이탈리아가 르네상스 시대로 발전할때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하게 된다. 이에 오스만 제국의 샤리아 법에 따라 새로 짓는 성당의 규모는 이슬람 사원보다 크게 지을 수 없게 되면서 그 규모가 크게 축소되어 동네 강당 정도로 퇴보하는 양상으로 이뤄졌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 이후 그리스의 종교건축은 다른 양식으로 변화하기보다 그 동안 금지됐던 동로마제국 시절의 비잔티움 양식으로 다시 돌아가는 경향을 보였다. 다만 현대에 사용하는 건축자재로 대체됐고 성화의 표현에 있어서 헬레니즘적인 감정표현이 강화됐다. 하지만 이런 비잔티움 회귀 성향과 러시아에서 유행한 네오 비잔티움 스타일 건축물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데 비잔티움 양식을 바탕으로 했지만 기존 구조에서 변화를 꽤해 돔을 극대화시키거나 바로크 양식, 신고전주의 등을 도입하는 특징이 있지만 그리스의 네오 비잔티움 양식은 기존의 비잔티움 건축 양식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았다.
돔에 빨간색이 칠해진 것도 이 곳이 오스만 제국이나 터키가 아님을 실감하게 한다.
만약 그랬다면 하맘에 빨간 페인트가 칠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현재는 음식점으로 개조해서 사용 중인데 겨울엔 클럽으로도 사용한다고 한다.
건물 내부 사진을 보면 하맘의 기본 구조는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물 끝에 이슬람식 오지 아치가 있었다.
이런 형태가 오지 아치로 기독교식 건축물과는 구분된다.
터키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가 태어난 집으로 대부분의 터키인이라면
한번쯤 꼭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다.
아타투르크 대통령이 태어났을땐 테살로니키가 오스만 제국령이었다.
1933년에 터키 공화국의 10주년을 기념하여 그리스 정부가 아타투르크 대통령에게 이 집을
선물했고 나중에 터키 영사관으로 소유권이 이전되게 된다.
터키 메르신 지방에 있는 타슈주라는 도시와 수도인 앙카라에 이 생가의 복제품이 있다.
생가로 들어서니 그리스인 직원과 터키인 직원 2명이 나를 맞아주었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직원분들이 놀라기도 한것 같은데 아주 친절하게 환영해주었다.
앞뜰에서 삼각대로 사진을 촬영하고 싶었지만 박물관 구역 모든 곳에서 삼각대 촬영을 금지하여 사진은 찍지 못했다.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사진이 전시돼있었다.
내부는 이렇게 전시실처럼 꾸며져 있고 또 어떤 부분은 아타투르크 대통령이 살았던 때처럼 가정집처럼 꾸며져 있다.
10년 정도 전엔 이 곳이 전시실이 아니라 박물관 전체가 가정집처럼 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일부 터키인들은 지금은 너무 박물관같다고 예전 모습을 그리워 하는 것 같다.
침실이 있던 1층 모형이다.
2층의 모형이다.
10대 시절의 아타투르크를 표현했다고 한다.
아타투르크의 모친은 아타투르크가 어린시절 이슬람 교육을 받길 원해서 이슬람 학교로 보냈지만
자신과 맞지 않아 세속주의 성향의 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
아타투르크의 모친인 주베이데 하님의 모습이 밀랍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주베이데는 이름이고 하님은 투르크 계열 유목민족 사이에서 지체높은 여성들을 호칭할때 사용되던 단어로
남성의 '칸'과 비슷한 명칭이다.
아타투르크의 금발벽안은 모친에게서 유전된 것이다.
밀랍으로 만든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형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밀랍의 완성도가 너무 높아서 마치 살아있는듯 했다.
이 당시의 모습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1920년대 말~ 1930년대 초반)의 아타투르크 대통령을 표현한 것 같다.
테살로니키는 동로마제국 시대까지 그리스인들이 가장 많이 살았지만 오스만 제국 말기엔 유대인, 투르크인에 이어 3번째 인구 비율로 떨어지게 된다. 이는 다른 지방으로부터 투르크인들의 이주와 더불어 기존의 그리스인 정교회 교도들이 무슬림으로 개종하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테살로니키가 현재 그리스령이기 때문에 아타투르크가 그리스어를 구사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공식적으로 그리스어를 구사한 적은 없다고 한다. 단지 그리스어로 된 노래를 한 적이 있었다는 것과 당시 다민족 사회였던 셀라닉(테살로니키의 오스만 제국시대 공식명칭)에서 간단한 그리스어 정돈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을 할 수 있는 정도다.
그리스인들 중에선 자신들과 전쟁을 한 지도자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리스에 대해 그가 한말을 옮겨본다.
"내가 투르크인과 그리스인이 5세기 동안 함께 형제처럼 살아온 테살로니키의 아들이자 루멜리아의 아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투르크인과 그리스인이 피를 흘렸던 전쟁에 참전한 것은 내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불행히도 그걸 운명, 필연 아니면 역사라고 부르든지간에 나는 다른 어떤 민족들보다 그리스인들과 더 많이 싸워야 한다는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양측이 (그리스와 터키) 동족상잔의 비극을 막는데 실패한 것은 나에게 평생 가슴아픈 일입니다."
박물관엔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타투르크 대통령은 옷을 잘 입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아니 옷뿐만이 아닌 당대에 유행했던 모든 문화에 능했다.
전시된 구두를 보면 요즘 유행하는 구두보다도 선이 날렵하고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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