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유랑

 

 

그 전날 이틀을 야간버스에서 해결한지라 이날은 충분히 자고 일어났다.

하이델베르크를 갈까 하다가 너무 피곤해서 그냥 프랑크푸르트를 둘러보기로 했다.

 

 

독일은 밥값이 너무 비싼것같아 걍 아침에 호스텔에서 주는 조식으로 버티기로 했다.

그 다음날도 호스텔 조식으로 버텼다.

 

 

호스텔에서 커피는 유료라서 2유로를 주고 사먹었다.

 

 

 

 

 

 

유로타워인데 여기서 이 사진을 찍은 직후에 일본인 노부부의 사진을 찍어줬던게 기억난다.

 

 

 

 

 

 

20세기초 건물로 카페 겸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에센하이머탑으로 1428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며 직접 올라가보진 못했다.

 

 

사실 여행을 다닐때 서점에서 책을 사는건 정말 꺼려지는 일이다.

책하나의 무게가 고스란히 어깨에 스트레스로 가중되기 때문에...

그럼에도 관광지에서 파는 역사 관련 서적은 나중에 굳이 보지않더라도 꼭 사고싶게 만든다 ㅎㅎㅎ

 

 

장자크 파울교회라는 곳으로 1833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독일 제1회 국민회의가 열린 곳으로 독일 민주주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지금 건물은 2차대전때 파괴된후 재건된 것이다.

지금은 교회가 아니고 전시관으로 사용중인데 안에서 독일인 단체관광객들이 가이드 투어를 하고 있었다.

 

 

내부는 크게 볼건 없었다.

예배당 자리에 주깃발이 놓여져 있었는데 이미 윤수랑 코블렌츠에서 주깃발은 봤기때문에 감동은 덜했다ㅋㅋ

 

 

 

프랑크푸르트 시청사로 1405년부터 600년간 시청으로 사용중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황제가 피로연을 열었던 방이 있다고 하는데 들어가보진 않았다.

 

 

Römer

뢰머광장인데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로마인들이 정착한 곳이라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터키에서 동로마제국 그리스인들에 대해 '룸'이라고 불렀던게 생각났다.

 

 

뢰머광장 측면에 있는 신축건물들이었는데 기존 건물과 같은 형태로 지어졌다.

 

 

Imperial Cathedral of Saint Bartholomew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에 도착했다.

1867년에 한번 불타고 1900년에 다시 지었지만 2차대전때 영국공군에 의해 내부가 완전히 타버려 1990년대에 복원했기 때문에 들어가면 새건물티가 많이 난다.

1562년부터 1792년까지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관식이 열렸던 역사적인 공간이다.

 

 

신성로마제국이 로마제국을 계승하는지에 대해선 부정적이지만 요샌 또 너무 신성로마제국이 까이는 분위기가 아닌가 싶다.

 

 

프랑크푸르트 역사박물관인데 돈아낄려고 안들어갔는데 나중에 블로그를보니 꽤 유익한 곳인것 같다.

여러분 프랑크푸르트 역사박물관은 꼭 방문하셔서 저처럼 괜한 후회하지마시기 바랍니다😇

 

 

마인강변에서 노인들이 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나도 이곳의 일부가 되고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Dreikönigskirche

드라이퀴니히교회라는 곳인데 카톨릭 교회인줄알았는데 개신교회였다.

원랜 당연히 가톨릭 교회로 지어졌고 1340년에 동방박사에게 봉헌된 교회이다.

교회 직원분인지 봉사하시는 분인지 중년의 여성분이 친절하게 환영해주어 잠시 대화를 나눴다.

나는 외국에가면 한국사람인걸 일부러 드러내는 편인데 한국에선 무교가 가장 많지만 종교가 있는 사람중에선 그리스도교가 제일 많다고 이야기했다.

 

 

한국에선 개신교건물하면 대규모 예배가 행해지는 메가처치이거나 걍 빌딩에 세들어 있는 곳이 많아서 교회건물은 그냥 거드는 느낌인데 독일은 개신교의 탄생지이다보니 이런 오래된 교회들도 있다는게 신기했다.

 

 

이 교회의 메리트는 이렇게 2층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직원분이 2층에도 올라가보라고 추천해주셔서 올라가보았다.

고맙고 좋은 마음만 남기고 직원분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교회문을 나섰다.

 

 

야경사진을 찍기위해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갔다.

사실 이 사진은 의도치 않게 찍힌것인데 두 남자가 역앞에 서있는게 느낌이 좋아 올려보았다.

 

 

아까 낮에 지나쳤던 아이젤너 다리인데 밤에 보니 정말 아름다웠다.

밤이다보니 혹시 누가 시비라도 걸지않을까 경계하면서 다녔는데 실제론 아주 안전한 곳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담임선생님이 오스트리아를 여행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모차르트 초콜릿이란게 있다고 한 3번정도 들었던것 같다. 그러다가 꼭 말기에 너네들은 사먹을 기회가 없을거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하필 또 이때 초콜릿이 안땡겨서 기회는 있었지만 못먹고 말았다.

 

 

어느덧 하루도 끝나가고 있었다.

내일은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날이다.

버스를 타고 밤새 9시간을 달려 프랑스 파리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보르도에서 파리로 갈때는 만석이어서 정말 고역이었는데 다행히 프랑크푸르트로 갈땐

사람이 많지않아 편안하게 갔던것 같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근처에 내려주었는데 비도 내리고 날씨가 좋지 않았다.

프랑스랑은 또 분위기가 달랐는데 좀 더 정돈된 느낌이었던것 같다.

독일이 역시 유럽의 대장주라는 느낌이 들었다ㅋㅋㅋ

역에서 1,2시간 시간을 때우다가 예약했던 프랑크푸르트 호스텔로 짐을 맡기러 갔는데 분위기가 꽤나 활발했다.

다시 프랑크푸르트중앙역으로 가서 표를 구입했는데 표발권기에서 구입하려다가 포기하고 직접 표를 살수있는

창구가 있어 그 곳에서 구매하였다.

 

이탈리아는 일정이 좀 되다보니 미리 공부를 해서 열차 클래스랑 몇가지를 숙지해갔는데 독일은 공부를 안해가서

가면서도 플랫폼은 맞는지 계속 불안해서 현지인들에게 계속 물어보았는데 아주 친절했고 다른사람을 도와주려는 경향이 있는 것같았다.

독일도 좋은 사람 나쁜사람 있겠지만 나는 좋은 사람들만 만났던 것 같다.

 

이날은 예전에 같이 음악을 했던 윤수를 코블렌츠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윤수는 배울 점도 많고 많은 추억이 있는 동생이다.

 

 

한국에 있을땐 삼다수사먹는 것도 아까워서 편의점 자체브랜드 500원짜리를 먹었는데

여긴 에비앙이 제일싸서 에비앙을 마셨다.

물을 먹고나서 전날 버스에서 무리를 해서그런지 깜빡 잠들어서 중간에 갈아타야하는데 한정거장을 더갔다.

안타깝게도 코블렌츠행 티켓을 새로 사서 갔는데 돈이 4만원정도가 더 나왔던것 같다.

삽질도 여행의 일부인셈치고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가서 침착하게 코블렌츠행 열차를 탔다.

결국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

 

코블렌츠역에 도착하니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윤수를 볼 수 있었다.

예전엔 윤수네 집에서 우리집까지 버스로 1시간 거리였는데 지금은 비행기타고 기차까지 타야한다😊

먼저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해서 윤수가 알아본 레스토랑으로 갔다.

 

독일에 와서 처음먹는 음식이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맥주는 여기 레스토랑 시그니처 맥주였는데 여태까지 먹은 맥주중에 제일 맛있었던것 같다 ㅠㅠ

문득 나중에 한국돌아가서 4개 만원짜리 수입맥주가 맛이 없게 느껴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윤수에게 여기가 독일인게 실감이 안나고 이태원의 서양음식점에서 서프라이즈 출연배우들과

밥을 먹는것 같다고 농담을 했다.

참고로 윤수가 계산을 했다. 독일은 밥값도 비싼데 너무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새벽엔 비가 내렸지만 다행히 날씨가 아주 좋았다.

유럽은 원래 비가 자주오고 날씨가 변덕스럽다는데 확실히 스페인, 프랑스, 독일에 있을땐 수시로 비가 왔던것 같다.

 

 

선제후 궁전으로 1784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지붕부분만 2차대전때 폭격으로 파괴되었는데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원랜 로마제국에서 온 장인들의 정착지가 발굴되었다고 하는데 따로 설명은 나와있지 않았다.

지금은 관공서로 쓰이는데 아쉽게도 내부입장이 안되었는데 가끔 행사가 있을때만 입장 가능하다고 한다.

 

 

 

 

독일 건축물들을 보고있으면 일제시대 건물과도 유사점이 보이는데 일본 근대건물들이

영국과 독일 건축양식을 가장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모더니즘 건물이 보였는데 담백해서 찍어봤다.

 

 

도시의 랜드마크인 도이치 에크(Deutsches Eck)에 도착했다.

빌헬름1세의 청동기마상의 포스가 어마무시했다.

기마상은 2차대전때 박살났고 다시 세운것이라고 한다.

청동판에 새겨져있는 독일어 글귀를 윤수가 번역해줬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애국심을 고취시켜서

전쟁에서 적을 향해 개돌어택을 감행할만한 글귀로 가득차 있었다.  까짓거 이 한목숨

바로 앞에는 독일의 주깃발들이 모여있었다.

라인강과 모젤강이 만나는 곳이라고 하는데 깃발에 정신이 빼앗겨 그리 신경은 쓰지 못했던 것 같다.

 

강건너편에 에린브라이트슈타인(Ehrenbreitstein) 요새가 보였다.

요새까지 케이블카로 이어져 있는 아쉽게도 운행하지 않는 날이어서 갈 수가 없었다.

 

 

베를린 장벽을 떼어왔다고 하는데 청계천에서 본 베를린 장벽이 떠올랐다.

1953년 6월 17일은 동독 노동자봉기가 벌어진 날이다.

 

 

발두윈 다리라는 곳인데 1429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동로마제국이 망하기도 전이군 ;;;

 

 

 

 

중국식당 이름이 아시아를 전부 통합할것같은 포스가 느껴져서 찍어봤다.

 

 

바로 앞에 Liebfrauenkirche(성모교회) 첨탑중 하나가 보였다.

12세기에 지어졌으며 여러번의 개축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도 2차대전때 공습때문에 첨탑 상부와 지붕이 불타버렸는데 후에 복원했다고 한다.

 

 

다음 장소인 미텔라인(Mittelrhein) 미술관에 도착했다.

여기선 DSLR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려면 추가로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고해서 스마트폰으로만 사진을 찍었다.

중세의 성화, 조각, 현대미술까지 콜렉션이 아주 다양했다.

 

 

윤수가 현대미술의 결정체라고했던 그 작품이다 ;;;ㅋㅋㅋㅋ

 

 

미술관을 나오니 어느덧 어두워졌고 헤어져야할 시간이 되었다.

나야 여행으로 온거지만 윤수에겐 이 곳이 삶의 터전인데 집에서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만나러 와줘서 너무 고맙기만 하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로 다시 기차를 타고 가는데 이 기차가 제대로 가는게 맞는지 걱정이 엄습했다 ㅠㅠ

기차안에서 긴장된 표정을 하고 있으니 다른 현지인 승객이 미소를 띄우면서 '나한테 뭐 물어볼거없어??'하는

표정을 하고있어서 이 열차 프랑크푸르트로 제대로 가고있는게 맞냐고 물어봤는데 그렇다고 한다 ㅋㅋㅋ

 

올때는 프랑크푸르트역에 잘 도착해서 호스텔에 가서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윤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야간버스를 밤새 달려 파리에 도착했다.

공중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세수까지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배낭을 맡길까 했지만 거의 돈 만원이 들어서 그냥 메고 다니기로했다.

이로써 도시세도 안내고 돈을 많이 아낄 수가 있었다.

 

 

 

 

 

예전에 소니아가 여기 사진을 찍은적이 있는데 여기 도착하자마자 그 사진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나나 소니아나 둘 다 여행을 좋아하다보니 방문한 곳들이 많이 겹친다.

여행도사 소니아... 여행가면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움직이는 소니아...😂😂

 

 

길거리를 다니는데 밥이라도 먹어볼까 했는데 가격이 너무 비쌌다.

여행 전에 정보를 수집할때 알고있었던 거긴했지만 비싸도 너무 비쌌던 것 같다.

 

 

생 에티엥 뒤몽 교회인데 그냥 지나쳤다.

 

 

여행책에서 봤던 팡테옹이 눈에 들어왔다.

로마의 판테온을 참고한 건물로 우리나라 국립묘지같은 곳이다.

입장료가 있어서 역시 들어가지 않았다.

 

 

파리 5구청이라는데 그냥 그랬다.

 

 

클뤼니 중세박물관인데 고대로마시대 목욕탕 유적위에 지어졌다고 한다.

로마시대보단 중세박물관의 성격이 강해서 미련없이 패스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서양인들이 잠시 고민하는 듯하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 나중에 후회할 것 같으면 무조건 가봐야한다^^

 

 

이때부터 계속 비가왔다.

나중엔 사진촬영이 어려움은 물론 카메라까지 걱정될 정도였다.

이 당시 찍은 사진은 물방울 흔적이 곳곳에 있다.

어쨌든 지나가는데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였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역시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아쉽게도 작년에 노트르담대성당이 불탔다는 기사를 봤다.

 

 

파리의 민사법원 건물이다.

이건 무료입장이 가능하다고해서 짐체크를 한뒤 들어갈 수 있었다.

이쪽으로 이동하다가 법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바람때문에 법복 모자가 바닥에 떨어져서 내가 재빨리 줏어주었다.

 

 

센 강을 지나갔는데 날씨가 너무 안좋다보니 여행사진에서 보던 정취가 느껴지지 않았다.

 

 

파리는 거의 영국날씨 비슷하다고 본 것 같은데 내가 갔을땐 확실히 그랬다.

비오면 비자체보다 신발이 젖는게 제일 싫다.

그래서 난 외국으로 여행갈땐 일부러 낡은 신발을 신고가는 편이다.

거기서 비가오면 그 신발 버리고 현지에서 새 신발 사서 신고 다닐려고...

 

 

지나가다가 고대 로마시대 유적이 나와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보았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폐쇄되어있었는데 왜 이런데를 그냥 놔뒀을까?

로마유적은 어디를 가도 로마제국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 같다. 고대로마때는 말이야..

 

 

비가 너무 심하게 내려서 결국 밥이나 먹기위해 맥도날드로 들어갔다.

가격은 거의 만원정도 했던것 같은데 퀄리티는 한국 맥도날드 쇠퇴기 때의 빅맥과 같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햄버거를 먹고 자리에 앉아 미적거리다가 밖에 비가오는지 창문을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엉뚱한 사람이랑 잠시 눈이 마주쳤다.

히잡을 쓴 여자였는데 인구구성상 아마도 알제리나 북아프리카계 이민자일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우스꽝스럽게도 미소를 짓길래 나도 웃어주었다. 시덥지 않은 일이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루브르 박물관인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어느덧 날씨가 어두워졌다. 그래도 파리에 왔으니 기념엽서한장을 사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콩코드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를 보게 되었다.

원래는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 있었다고 한다.

 

 

여러분 시간이 있을때 많이 여행하세요(새삼스러움)

 

 

프랑스 군사 박물관이다. 건륭제의 갑옷을 소장하고 있다던.....

 

 

여긴 솔직히 의무감때문에 방문해봤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중 하나이니....

 

 

 

 

개선문으로 당일치기 파리여행은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이번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이동을 위해 다시 Flix 야간버스를 타러 가야한다.

Flix 버스를 타고 프랑스에 도착하니 어느덧 저녁이었다.

오는 도중에 버스를 멈춰세워서 경찰이 여권을 검사했는데 여기도 불법체류 문제가 심각한 것 같다.

 

보르도에는 마땅한 호스텔이 보이지 않아 에이비앤비를 통하여 숙소를 예약할 수 있었다.

 

주인 아저씨가 생각보다 친절했고 와인까지 대접받았다.

 

 

 

 

Saint-Louis-des-Chartrons

성 안드레 성당이 보였다.

고딕양식의 건물인데 한국 천주교 건축이 프랑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서 다소 친근하다.

 

 

Pey-Berland Tower

도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인데 입장료에 돈쓰기 싫어서 그냥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Parais Rohan이란 건물로 대주교의 궁전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보르도 미술관에 들렀다.

파리에서도 미술관에 들를 계획은 없어서 큰 맘먹고 표를 사서 들어가보았다.

 

 

보르도 미술관의 콜렉션에 대해선 나중에 박물관 코너를 만들어서 따로 포스팅을 올릴까 한다.

 

 

Basilique Saint-Seurin

성 세베리누스 성당이다

 

 

한국의 근대건물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붉은 벽돌건물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막상 서양엔 붉은 벽돌건물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꽤 오래된 건물로 보이는데 맥도날드 건물로 쓰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유럽갬성인 것이다. 이때 돈을 아끼느라 맥도날드에 가서 뭘 사먹진 않았다.

친절한 에이비앤비 아저씨가 비스켓을 줘서 그걸로 연명하고 있었는데 이땐 나도 정말 미친놈이었던것 같다.

아저씨 이름이 엉성수앙이었는데 발음이 어렵지만 좋은 분이었다는거 하나만 기억하고 가자.

 

 

건물 형태가 강화도의 조양방직 건물과 비슷했다.

물론 이땐 조양방직의 존재를 몰랐고 사진을 편집하다 깨달은 것이다.

 

 

보르도의 거주지역에선 주택건물들이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심플하면서도 통일성이 돋보였다.

 

 

Parc Rivière

Parc Rivière라는 공원인데 사전 조사없이 지나가다가 그냥 들른 곳이다.

폐허가 된 작은 성채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잘 안가는 곳이다보니 내 여행이 더 특별해 진것 같다.

 

 

일제강점기 건물과 흡사해서 걸음을 멈추고 찍어보았다.

타츠노 킨고 박사가 봤으면 좋아했을 것 같은 건물이다.

 

 

보르도 공공정원에 들렀는데 여긴 겨울엔 방문하는게 아니었던 것 같다ㅎㅎ

 

 

공공정원에 있는 식물원 건물인데 문이 다 닫혀있었다.

 

 

 

 

프랑스혁명때 권력싸움에 밀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온건파 지롱드당을 추모하는 기념탑이라고 한다.

보르도는 지롱드주에 속하니 이곳이 그들의 정치적 고향인 셈이다.

탑위에 있는 동상은 자유의 여신상이라고 한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데 창가에 앉아서 담배를 피고있는 사람이 있어 참 멋있어서 찍어보았다.

참 자유로운 영혼이 아닐 수 없다.

 

 

 

 

성 미카엘 성당으로 14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이 곳은 한번 들어가보고 싶어서 시간을 할애해 보았다.

 

 

프랑스 고딕양식이라 기본적인 틀은 한국 천주교 성당들과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15세기에 건축된 고딕양식의 종탑이다.

주민들에게 화재발생시 대피경보를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Aquitane 게이트라는 곳인데 보르도의 명소중 하나인 곳이다.

 

 

이 사진부턴 야경사진으로 넘어간다.

 

 

보르도 대극장인데 너무 멋있었다.

야경사진을 찍을려면 삼각대가 있어야 하니 귀찮긴 하지만 항상 집에와서 보면 찍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Place de la Bourse

보르도의 랜드마크인 곳으로 야경맛집인 곳이다.

원래 여름엔 바닥에 물로 채워져서 그대로 저 건물이 비추는데 아쉽게도 겨울이라 그 광경을 볼 수가 없었다.

 

 

Pont de pierre

나폴레옹 시대에 지어진 다리인데 전 유럽을 통털어 가장 아름다운 다리가 아닐까 싶다.

꼭 밤에 가보고 한번 쯤은 다리를 건너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Palais Gallien

로마시대 원형극장 유적지로 안으로 들어갈 순 없게 되있지만 벤치에 앉아 충분히 조망을 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로마유적은 도시에 무한한 영감과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인것 같다.

 

관광을 끝내고 그 날밤에 파리로 가는 Flix 버스를 타러가기전에 에어비앤비에 들러서 짐을 찾고 혹시 괜찮으면 샤워를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오케이 해주셨다. 사실 난 이미 체크아웃도 한 상태인데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가기전에 파리까지 긴 여행이 될 것이라며 과자까지 챙겨주셨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가서 묵고 싶다.

엉성수앙 아저씨 고맙습니다!!!

마드리드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가면서 소니아한테 빌바오로 가는 중이라고 연락을 했다.

나야 여행이지만 소니아는 생활인이니까 감히 만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너무 고맙게도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원랜 호스텔 도미토리룸을 예약했는데 우범지대 근처라 위험하다고 안전한 올드타운에 호텔을 예약해주었다.

신세만 지는구만 ㅠㅠㅠ

 

빌바오에 도착하니 자정이었는데 지하철역으로 가다가 방향을 반대로 가다가 소니아가 얘기한 그 우범지대를 들어가게 되었다.

San Francisco라는 구역이었는데 분위기가 도저히 이상해서 50미터정도 들어갔다가 다시 반대방향으로 빠져나왔다.

나중에 이야길 들어보니 예전엔 마약의 온상이었고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그래도 안심이 안되서 말렸다고 했다.

소니아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한참을 걸은 뒤 올드타운 Casco Viejo(까스코 비에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 몇군데를 방문했는데 소니아가 속성으로 알려준 바스크어를 써보았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

가는 곳마다 자연스럽게 현지인들이랑 어울릴 수 있었는데 소니아의 친화력이란 정말 대단하다.

 

 

Kalimocho라고 와인과 콜라를 섞은 음료로 스페인에선 소맥처럼 시대불문하고 인기가 많다고 한다.

어느덧 시간이 꽤 지나 내일 일정을 위해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에 소니아가 일가기전에 잠시 가이드를 해주기로 했다.

지난번 그라나다로 가기전에 지나쳤던 시장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스테인드글라스가 너무 예쁘다.

 

 

햄을 파는 점포였는데 이럴땐 여행자여서 마음대로 살 수 없는게 참 아쉽다.

 

 

올리브랑 몇가지 피클도 있었다.

 

 

 

 

시장을 나와서 소니아랑 이야기를 하면서 걷고 있는데 재빨리 남자 3명이 와서 벽에 무슨 틀을 대고 스프레이로 뿌리고 도망쳤다.

빌바오가 포함된 바스크주 독립세력이라는데 그라나다 가기전에 다리위에서 경찰한테 잡혀서 엎드려 있던 사람들도 독립세력 일원일 거라고 했다.

대놓고 드러내진 않지만 이 곳의 상인들은 이들 독립세력을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소니아 본인은 빌바오에서 자랐지만 독립에 동의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카탈루냐 독립운동때도 반대했던 것 같다.

2000년대까지만해도 바스크 무장독립세력이 있어서 아무한테나 총을 쏴갈기곤 했다는데 지금은 그런건 없다고 한다.

 

 

 

 

어느새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 보르도로 향할 시간이 되었다.

사진은 유럽 배낭여행객의 최고존엄으로 불리는 플릭스 버스인데 가성비는 최고지만 동시에 내 체력을 앗아가는 주범이기도 했다;

익히 알려졌지만 현재 스페인 북부는 코로나 바이러스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많은 상점들이 락다운되면서 문을 못열고 있고 경제적인 타격이 너무 커서 여름까지 가기도 전에 강제로 락다운을 해제해야될지도

모른다는데 어쨌거나 빨리 혼란이 끝나길 바랄 뿐이다.

 

 

 

San Sebastian이란 도시에서 승객을 추가로 태우고 출발했다.

 

 

프랑스 떠나기 전에 있던 휴게소인데 밥도 비싼것 같고 걍 돈도 아낄려고 밖에 앉아서 핸드폰에 저장된 워킹데드를 시청했다.

규모도 아주 작았는데 외국에서 한국의 정안알밤휴게소같은 곳은 한번도 못본 것 같다.

 

하루 뿐이지만 정든 그라나다를 뒤로 하고 마드리드행 버스를 탔다.

그나마 이번엔 오전부터 이동하는거라서 좀 나았다.

 

 

그라나다 터미널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산 건데 모양이 카스테라랑 비슷해서 샀는데 맛은 거의 비슷했다.

Bizcocho(비즈코초)라고 불리고 정식 명칭은 Bizcochuelo(비즈코츄엘로)이다.

 

 

Teatro Real

 

 

펠리페 4세의 동상으로 최초의 승마 동상중 하나라고 한다.

이것도 나중엔 여느 역사적인 동상들처럼 박물관에 보존되고 여기에 모조품이 세워지겠지?

 

 

마드리드 왕궁인데 시간이 없어 들어가보지 못했다.

 

 

산타마리아 라 레알 데 라  알무데나 대성당이다. 이름 한번 길다 😂😂

1993년에 완공됐는데 100년 동안 지었다고 한다.

제대로 들어가서 본 유럽성당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무료이고 기부금 1유로를 받는다. 난 여행이 한참 남아 그냥 기부금 안내고 둘러봤다...

이런 곳은 오래된 건물을 아니지만 도시를 대표하는 종교 건축물로서 한번 쯤은 둘러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당은 지은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제대위에 안치된 알무데나의 성모상은 만들어진지 1000년이 넘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성모상 앞에서 절을 했다.

그래서 나도 줄을 서서 성모상을 알현하고 앞으로 여행 잘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국기를 보니 이탈리아와 관련된 건물인 것 같다.

 

 

마드리드가 수도로서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 관광으로 사람 끌어모으는 곳은 아니라서 좀 더 사람사는 느낌이 났던 것 같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런 사진을 보면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텅빈 길거리 풍경이 그려진다.

 

 

산 미구엘 시장

 

 

 

 

까사 데 라 파나데리아

 

 

 

 

 

 

그랑비아 거리인데 1929년에 조성된 거리로 19세기 프랑스 파리를 모방하였다고 한다.

 

 

레알 마드리드 공식샵이라는데 축구를 별로 안 좋아해서 그냥 지나쳤다.

레알 팬이라면 꼭 가야할듯...

 

 

여기서 운동화를 사기로 결정했다.

 

 

젤 싼 신발로 구매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어느덧 빌바오로 다시 떠나야해서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아쉽지만 Madrid로 가기위해 Bilbao의 Abando역으로 왔다.

나중에 깨달은 건데 진짜 Spain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하면 기차타기 너무 쉽다.

 

 

Spain의 국영철도기업인 Renfe 열차가 도착했다. 내가 탈 기차는 Alvia등급이다.

속도는 220~250km/h인데 쾌적했다.

 

 

열차에서 소니아가 챙겨준 하몽을 먹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ㅠㅠ 맛도 일품이다.

 

 

Madrid에 내리자마자 버스터미널로 가기위해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어쩔 수 없이 지하철 교통카드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쓸 일이 있겠지~

 

 

자 이제 버스를 타고 Madrid에서 Granada로 가야할 차례다.

한국은 5시간안에 다 해결되는데 유럽 왠만한 나라는 2배정도로 보면 되는것 같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커피를 하나사서 땅바닥에 앉아서 마셨다.

 

버스에서 밤새 뒤척였던 것 같다.

도착하니 6시 반이었다.

야간버스가 숙박비도 아낄 수 있고 이동도 할 수 있어서 좋은데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예약한 호스텔로 가서 체크인을 한뒤 곧바로 Alhambra궁전으로 갔다.

티켓 예매는 한국에서 미리 하고 왔는데 그마저도 미리 예약을 해야했다.

아시아에 있는 유적지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렸던 곳이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꼽자면 히메지성 정도?

여긴 전세계 관광객들이 몰려오는데 그마저도 다 못들어가다니...

 

 

 

 

 

 

 

 

풍화된 벽면이 이곳이 오래된 곳임을 말해준다.

 

 

 

 

알바이신 구역이 보인다.

날씨가 흐렸다가 맑았다가 미친년 널뛰기하듯이 계속 바뀌었다.

 

 

 

 

 

 

카를로스 5세 궁전 입구에 있는 부조인데 전투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2층 회랑에 올라가보았다.

 

 

헤네랄리페 정원. 알함브라 궁전의 대미를 장식하는 곳이다.

 

 

곳곳에 무슬림 왕조시절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알함브라 궁전을 빠져나와서 알바이신 지구로 가기로 했다.

여기도 산책하기 참 좋은것 같다.

 

 

한국사람이야 어딜가나 있지만 규모대비 제일 많았던 곳이 그라나다였던 걸로 기억한다.

 

 

 

 

 

 

Granada의 뷰 맛집인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사진을 남겨봤다.

 

 

전망대 옆엔 이슬람사원이 있었다.

이슬람왕조가 스페인을 떠난지 500년만에 지어진 이슬람사원이라는데 위치도 그렇고 스페인정부에서 많은 배려를 해준 것 같았다.

 

 

 

 

 

 

흐렸다가 맑았다가 나중에 저녁땐 비가 계속 내렸다.

 

 

이슬람 왕조시대에 세워진 문이라고 한다.

유적에 저런 그래피티 좀 안했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나는 나중에 그리스에서 더 한걸 보게된다.

 

 

알바이신을 보면 옛 이슬람 양식이 도시 건축의 기준이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Granada의 매력은 바로 유럽에서 이슬람 문명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 중의 하나라는 것이 아닐까?

(그리스에서도 오스만제국시대의 건축물이 남아있지만 스페인처럼 본토 문화에 스며들지 않았다.

오스만시대 건축물을 관광에서 별로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지도 않고 말이다.)

 

 

Granada 대성당인데 입장료를 받아서 밖에서 보는걸로 만족했다.

여행 초기이고 돈을 아껴야지....

 

잠을 제대로 못잔 상태에서 어느덧 알함브라 궁전과 알바이신구역을 일주하니 몸이 너무 고단해서 일단 숙소로 가서 한시간정도 쉬다가 저녁에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

 

그러나...............

 

숙소들어가기전 바로앞에 있는 광장에서 내가 지나가는데 10대 무리가 나를 향해 "니하오우~~" 하면서

익살스럽게 웃고 즐기고 있었다.

씹고 가려다가.... 아니야 이건 싶어서 쫓아가서 따졌더니 영어로 미안하다고 진심어린 태도로 사과를해서 나도 더 뭐라하진않았다.

생김새나 분위기가 나쁜 학생들같진 않아보였는데 인종차별주의자같진 않아보였다.

만약 위험한 애들같았다면 나도 몸을 사렸겠지...

한 10분동안 설교를 했다. 나같이 생긴 사람이 다 중국사람이 아니고 한국사람도 있고 일본사람도 있고 대만사람도 있고 몽골사람도 있다... 먼저 어디서 왔냐고 물어봐야하는게 정상이고.....

 

주저리 주저리 떠들었지만 어쨌든 나도 이런일은 겪은건 그때가 처음이라 기분이 좋진 않았다.

어차피 피곤했고 멘탈회복도 하려고 숙소로가서 누워서 좀 쉬는데 소니아한텐 얘기안할까하다가 그냥 참다 병될것 같아서 다 이야기했다.

소니아도 한국에서 불쾌한 일을 당하거나하면 다 이야기했기 때문에 힘든건 얘기해야지.....

지금이야 받아칠줄도 알고 하는데 이 땐 정말 기분이 좋지 않더라.

 

 

좀 쉬다가 나와서 야경을 촬영해보았다.

저녁이 되니 비가 많이 내려서 신발이 다 젖고 말았다.

이럴때를 대비해서 일부러 오래된 신발을 신고간건데 마드리드에서 운동화를 사야겠다.

 

 

 

그라나다의 야경을 만끽한 후 타파스 가게에 들러서 맥주 한잔과 타파스를 즐겼다.

가격도 저렴하고 맥주도 맛있었다.

이런게 여행의 묘미이고 즐거움이다.

 

나와서 숙소로 가는 골목으로 지나가는데 술에 취한 남자 한명이 철푸덕하고 넘어졌다.

넘어진 남자는 거구인데 일행인 남자는 상대적으로 왜소해서 내가 도와줘야겠다 싶어서 달려가서 같이 일으켜 세워줬다.

그 남자는 스페인어만 할줄알고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니 말이 안통했는데 손가락으로 따봉을 해서 나도 따봉해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ㅎㅎ

 

그라나다에서 하루도 이렇게 지나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소니아가 빌바오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제 몇시간뒤면 그라나다를 가기 위해 마드리드행 기차를 타야한다.

 

짐을 맡겨놓고 도시를 둘러보려고 했지만 관광안내소에서 알려준 짐보관소는 왠일인지

현재 짐을 보관해주지 않는다고하여 결국 배낭을 멘채 이동하게 되었다.

 

아리아가 극장을 그냥 지나쳤다.

 

 

산 니콜라스 성당인데 들어가보진 않았다.

 

 

Joan Santuen 성당인데 초기 바로크 건축양식이 참 멋지다.

 

 

성 안토니오 성당이다.

입장료가 있어서 들어가보진 못했다.

앞으로 여정이 많이 남아있기도 했고...

 

 

Mercado de la Ribera라는 곳으로 기차역인가 했는데 시장이라고 한다.

이땐 빨리빨리 지나치느라 들어가지 않았는데 나중에 그라나다에서 돌아오면서 내부로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1920년대에 지어진 시장인데 10년전에 리모델링을해서 새건물같이 보인다.

 

 

이 곳 근처에 오기 전에 다리를 하나 건넜는데 거기서 젊은이 몇명이 엎드린 채로 경찰한테 포박당하는걸 봤다.

나중에 소니아에게 물어보니 빌바오가 속해있는 바스크 지역의 분리독립 지지세력일 것이라고 했다.

바스크 분리독립세력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해보도록 하겠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발견했는데 안으론 들어가지 않았다.

이 건물 하나로 빌바오가 오래된 도시에서 젊은 도시로 이미지 변화에 성공했다는데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도 건축당시엔 같은 의도였을 것이다.

 

잠실야구장을 철거하고 건축된 동대문 DDP도 같은 취지로 지어졌을텐데 왜 난 별로 마음에 안 들까?

잠실야구장도 십수년내로 철거할 것으로 보이는 한국에선 건축물은 소모품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이 건물은 일제시대 서양식 건물과 너무 흡사해서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얼핏보면 일본의 건축가 타츠노 킨고가 만든 것같은 건물이다.

붉은 벽돌 성애자 타츠노 박사님....

 

 

Metropolitan Isozaki라는 건물로 스포츠센터라고 한다.

이전에 지어진 건물을 파사디즘 형식으로 남겨둔것 같은데 이런 방식을 까는 사람도 있겠지만 도시재생을 위한 현실적인 타협이라고 봐야 할 것같다. 뭐 우리나란 파사디즘으로 남겨놓을 건물들도 별로 없지 않은가.

 

 

유럽은 날씨가 변덕져서 그렇지 미세먼지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빌바오 미술관인데 수준 높은 미술품들이 꽤 많다고 한다.

 

 

빌바오 시청건물인데 역시 바쁜 몸인 관계로 안 들어갔다.

차를 타고 역시 부르고스 주에 위치한 Frias에 도착했다.

내가 Frias라는 이름을 이 블로그에서 쓰게된 것도 이 곳의 기억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2014년에 소니아가 보여줬던 Frias의 사진들을 보고 언젠간 가고싶다고 했을때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 그 말을 둘 다 지키게 되어 마음이 흐뭇했다.

 

Frias는 인구 300명이 좀 안되는 요새도시로 스페인에서 가장 작은 도시라고 한다.

 

Puente de Frias

12세기에 지어진 로마식 다리인데 보존이 아주 잘되있었다.

 

 

Ermita de Santa Maria de la Hoz

절벽아래 있는 교회로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양식이다.

아쉽게도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가지는 못했던...

 

 

날씨가 좋지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스페인 북부는 이처럼 산이 많다.

 

대도시라면 또 오게될 가능성이 크니 몇군데 빠뜨려도 그게 재방문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이런 소도시는

일부러 고생해서 오지않는한 그대로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최대한 열심히 봐야한다.

 

 

절벽위에서 도시를 굽어보고 있는 Frias 백작의 성이다.

12세기와 15세기 사이에 지어졌다.

 

 

절벽위의 집들이 참 멋있다.

 

 

어느덧 하늘이 어두워졌다.

잠시 문밖에 나왔다 들어가는 현지인들을 빼곤 관광객들도 찾기 힘들었고 너무나도 고요했다.

 

 

불이 꺼진 집들이 많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것일까?

 

 

San Vitores Church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로 13세기와 14세기 사이에 지어졌다.

 

 

내려가는 길이 비때문에 미끄러웠다.

 

내려가는 길에 작은 음식점이 하나 열려있어서 들렀다.

맥주와 타파스를 곁들여 먹었는데 참 맛있었다.

첫번째 여행지로 스페인을 선택했던게 참 잘한 선택인것 같아 흡족할 따름이다.

 

 

 

숙소 들어가기전 마트에 가서 구경을 했는데 하몽 종류도 많거니와 가격이 굉장히 저렴했다.

 

 

소니아가 나를 위해 숙박을 예약해주었는데 너무 고마웠다 ㅠㅠ

전통가옥을 호텔로 개조한 곳이었는데 의외로 따뜻했고 아주 깔끔하고 좋았다.

너무 잘 지내서 감사의 인사로 스페인사람인 호텔 사장님에게 선물로 팩소주를 드렸다.

 

내일은 다시 빌바오로 이동하는 날이다.

 

상하이 푸동공항을 떠나서 파리 샤를드골 공항을 경유하여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위탁 수화물을 찾고보니 스페인에서는 입국심사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당시 쉥겐조약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였음)

혹시 불법입국이 되는지 걱정되서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파리에서는 입국심사를 했지만 이곳 스페인에선 입국심사를

거치지 않았는데 괜찮냐고 물어보니 안내원이 파리에서 이미 유럽에 들어왔기 때문에 할 필요가 없다고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속으로 바보아니냐고 했을듯 ㅋㅋ

 

장거리 비행탓에 머리카락이 떡지고 초췌하여 공항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세수까지 마쳤다.

이어서 면도를 하려고 1회용 면도기를 꺼내는데 플라스틱 커버를 급히 떼다가 면도날에 손이 상당히 깊게 베어 피가

줄줄 났다. 거기다가 면도하다 상처나서 피 자국 남음 망함 ㅋ

지하에 있는 의무실로 가서 밴드에이드를 부탁하니 담당직원이 친절하게 여분까지 챙겨주었다.

이제 펜팔친구인 소니아를 만나러 빌바오로 가기위해 버스를 타러 가야한다.

 

 

새벽 3시에 빌바오로 떠날 버스가 도착했다. 무엇보다 공항에서 바로 빌바오까지 연결되니 좋았다.

사진에 보이는 ALSA버스는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있는 고속버스회사이다.

참고로 다른 버스회사에선 와이파이가 됐다 안됐다하고 내 인내심을 시험했는데 ALSA가 가장 만족스러웠던것 같다.

4시간 정도를 달리는 동안 잠을 자야.....하는데 비행기에서 이미 잠을 충분히 잤고 여행에 대한 두근거림에 1시간 남짓밖에 못잤다-_-;;;

 

 

빌바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소니아가 마중 나와있었다.

소니아를 알게된 것은 2014년, 언어교환 어플에서 내가 사는 동네(관광지 아님) 사진을 올려서 신기하고 반가워서 메세지를 보냈던게 인연이 되어 친구가 되었다.

빌바오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1시간 거리에 있는 Burgos주로 이동했다.

Burgos주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기운 좀 차리라고 까페로 데려가 주었다.

에스프레소를 한 잔하고 밖에 나오니 차가운 공기가 너무 좋았다.

그 때 찍은 사진이 바로 위의 사진이다.

 

 

Iglesia de Santa Cecilia

먼저 에스피노사 데 로스 몬테로스 라는 곳에 도착했다.

사진에 나온 이글레시아 데 산타 세실리아라는 성당앞엔 과일 노점이 열려 있었는데 주인 아저씨가 영어를 잘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남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대화를 재개했다는 뉴스를 봤다고 했다.

소니아가 말하길 이 동네에서 영어 잘하는 사람 거의 찾아보기 힘든데 자기도 놀랐다고 한다.

참고로 위의 성당은 1510년에 완공되었다.

 

 

이 곳에선 동양인이 아예 0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쪽 아니면 이 쪽은 완전 로컬이다.

 

 

소니아가 자기 친구가 운영하는 바에 데려가주었다. 미리 외워둔 스페인어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스페인 사람들이 외향적이고 활발하다지만 소니아가 자기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해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Torre de los Velasco

바에서 나와서 다시 차를 타고 벨라스코 탑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소니아가 이 요새는 사유지로서 에스피노사를 지배하던 영주가문 후손들의 소유라고 설명해 주었다.

내부로 들어가 보겠다.

 

 

탑 내부는 모두 제거된 상태였다. 보다시피 2층과 3층이 있었다는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스페인 문화재 중에 레드리스트(보존이 시급)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예전에 소니아가 스페인 북부는 남부랑 상당히 분위기가 다르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외국인들이 알고있는 정열적이고 유쾌한 스페인의 이미지는 남부의 이미지라고....

스페인 북부에 와보니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전문가나 직접 방문한 사람이 아니고선 이 사진을 보고 스페인이라고 할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Palacio de los Cuevas Velasco
Palacio de los Cuevas Velasco

벨라스코 궁전으로 17세기 르네상스 형식의 건축물이다.

 

 

Casona del General Marcide라는 곳으로 Don Manuel Marcide이란 장군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소니아가 어렸을땐 장군의 가족들이 집을 출입하는걸 흔히 볼수 있었다고 하는데 열쇠구멍으로 정원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똑같이 따라해봤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채 스페인에 왔더라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었을까? 그저 고맙기만 했다.

 

 

예전에 스페인 고성들 가격을 검색해보니 제일 싼게 20억원에서 30억원 사이였던걸로 기억한다.

 

 

스페인 북부다운 척박한 이미지가 잘 어울리는 교회다.

 

 

 

Valles Pasiegos로 이동했다. 이곳은 Pasiegos의 칸타브리안인들에 의해 옛 방식으로 목축업이 이뤄진다고 한다. 아쉽게도 겨울이라 그런지 원주민들 모습은 보지 못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중에 말들이 차를 가로막았다. 주인도 없고 자기들끼리 어디로 가는걸까?

 

 

근처 식당을 찾았다. 여기도 로컬이었는데 내가 들어가자 동네 주민들이 좀 놀란 눈치였다. 외국인이 여길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표정들이었다. 식전빵이 나왔는데 한국에선 어디서 파는지 몰라 아쉽다.

 

 

Calamaritos fritos라는 음식인데 꼴뚜기 튀김이다.

 

 

Fabada라는 스프인데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을 것 같다.

 

 

이 모두 2만원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정신없이 먹부림을 달렸지만 양이 너무 많아서 두 사람이 다 먹지 못했다.

거기다가 와인까지 나왔는데 그 또한 다 못먹었다.

 

 

 

2018년초에 난생 처음 유럽여행을 계획하게 된 이유는 더 늦기전에 유럽을 한번 가봐야 한다는 단순한 동기때문이었다.

그때까지 주로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만 여러 차례 여행했으니 유럽은 잘 알지도 못하고 또 가서 얼마나 헤맬까 하는 걱정이 많았다.

 

인천→상하이→파리→마드리드의 일정속에서 상하이에서 저녁시간부터 그 다음날 아침까지 레이오버를 할 수 있었다.

 

우선 예약한 호스텔에 가서 짐을 풀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짐을 풀고 카메라만 들고 난징동루로 나왔는데 날씨는 비도오고 아주 안 좋았다

그래도 따로 갈려면 비자 수속비 7만원이 더 드니까 기쁘게 여행하자는 마음으로 와이탄으로 향했다.

 

영국과 미국 조계지 시대에 지어진 근대 건물들을 보고 그 규모에 감탄밖에 나오질 않았다.

인천 개항장 거리나 군산 근대거리는 물론이고 일본에도 이와같은 규모의 근대건축물군은 찾아보기 힘들다.

와이탄의 근대건축물들은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아쉽게도 동방명주탑은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비도 계속 와서 카메라가 걱정되어 다음을 기약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크리스티 경매장의 상하이지점이다.

와이탄 앞쪽의 건물들뿐만 아니라 뒤쪽에도 근대건물들이 아주 많았다.

 

 

에어조던 스토어를 보면서 몇년전에 있었던 마이클 조던과 중국 차오단스포츠의 법적 분쟁이 떠올랐다.

 

 

남아있는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상하이를 둘러보기위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호스텔을 나왔다.

 

 

화려하진 않지만 이 건물도 근대의 세례를 받은 모습이다.

 

 

 

 

 

번드 반대편의 지역들은 주거건물로 지어진 근대건물군이 많았다.

한국이나 일본에서야 근대건물이 많지 않으니 그 명칭을 따로 기억하는게 가능하지만 이 곳의 무수한 건물들의 역사를 전부 파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어느덧 공항에 가야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난 비행기를 한번 놓친 적이 있어서 그와 같은 경험은 두번다시 하기 싫은게 사실이다 ㅠㅠ

다 못봐서 아쉽지만 나중에 몇일정도 시간을 내서 상하이를 더 자세히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