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9 터키 -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 하기아 이레네
이번에 포스팅할 톱카프 궁전은 15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오스만 제국의 정궁으로
사용된 곳이다.
한국으로 치면 경복궁과 창덕궁을 합친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경의의 문으로 제국시대엔 이 문부터 백성들의 출입이 제한됐다고 한다.
톱카프궁 앞에선 큰 개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은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다.
대부분의 개들은 누워서 자고 있는데 일부는 관광객들 옆에 붙어서 어슬렁대기도 하는데
자신들이 관광객들을 지켜준다고 생각해서 그런거라고 한다😂
입구에서 자난을 만났다.
왼쪽 건물이 '부엌궁전'이라는 곳으로 황실주방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이 곳엔 중국, 일본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도자기가 전시되있다.
청조시대 중국도자기가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중국인 단체관광객 중 어떤 아저씨가
도자기를 보고 큰소리로 "중궈다!"라고 외쳐서 깜짝 놀랐다.
무슨 큰일이라고 소리를 그렇게 질르나...
참고로 내부사진촬영은 금지되있다.
구중궁궐이란 말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옛 콘스탄티노플 구역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톱카프궁에서는 시내를 조망할 수 없었다.
아흐멧 3세 도서관이다.
도서관 내부에 있는 장식이다.
황제 알현실이다.
톱카프궁전 사원인데 규모가 아담했다.
보안요원 아저씨가 벽에 등을 기댄채로 너무 편안하게 풍경을 즐기고 있어서 평화를 깨기 싫어
조용히 구경하고 사원에서 나왔다.
궁궐의 반대편은 바다쪽이었는데 성벽으로 막혀있었다.
이즈닉에서 제작된 타일이다.
이스탄불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타일은 비교적 저렴하지만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진 타일은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오스만 제국에서도 칠기 기술이 발달했다고 한다.
이 파빌리온은 황제가 라마단 기간에 이프타르를 행했던 장소라고 한다.
또한 여름낮엔 그늘을 즐기는 용도로 여름밤엔 달빛을 즐겼다고 한다.
여러 개의 타일이 모여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되있다.
몇몇개는 색깔이 달라 나중에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아랍어가 쓰여진 타일이다.
터키 문화재 건축물에서 아랍글자가 써있는걸 보면 마치 한국의 고궁에서 중국 한자가 연상된다.
과거에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참고로 나는 한자를 잘 몰라 궁궐현판에 있는 간단한 한자도 엉뚱하게 이야기해서 친구한테
혼나곤 한다.
할례실의 입구 전체가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다.
톱카프 궁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오스만 제국이 유럽과 지속적으로 교류했기 때문에 톱카프 궁전도 서양 양식의 영향을
보여준다.
사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 경복궁처럼 19세기에 혁신없이 중세건축 그대로 지어진 건축물보단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편이 더 가치가 있다고 본다.
제국 의회 입구로 들어가는 문이다.
제국 회의실 내부인데 권위와 위엄이 느껴지게 장식되 있다.
하렘에서 일하는 내관들이 담배를 피웠던 흡연실이라고 한다.
장대같이 긴게 바로 파이프다.
여기서부터 하렘이다.
하렘은 제국의회 건물과 바로 옆에 있는데 궁전 전체로 보면 중앙에 위치해있다.
궁전의 뒤쪽에 위치한 다른 궁전의 하렘과는 다르다.
하렘의 여인들은 하렘밖의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지만 소리로 뜻을 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특징을 이용해 하렘의 여인들을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는데 법원건물에 있는
황제의 자리 바로 뒤가 하렘이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재판 내용을 들을 수 있었고
의사결정 과정에도 황제를 통해 참여할 수 있었다.
자난이 톱카프 궁전이 돌마바흐체 궁전에 비해 전체적으로 관리상태가 좋지 않다고 얘기했다.
사실 그러했다.
돌마바흐체 궁전이 정말 지금 사용하고 있는 궁전을 방문한 느낌이라면 톱카프 궁전은
황제나 황실가족이 아주 오래전에 살았다가 떠나버린 느낌이 들어서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유서깊은 궁전이니 난 너무 좋았다.
명나라, 청나라 궁녀들은 한번 들어가면 죽어야 나올 수 있었다고 하는데 오스만 제국의 하렘은
후궁들만 아니면 외부로 나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황태후의 방에 있던 벽화인데 서양식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무라트 3세때 지어진 황제의 방이다.
1585년에 제국의 수석 건축가인 Davut Aga에 의해 지어졌다.
Davut Aga는 미마르 시난의 제자로 이스탄불에 있는 예니 사원이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방은 톱카프 궁전의 다른 어떤 공간보다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황제의 방에 있는 이 돔이 톱카프 궁전에서 가장 큰 돔이라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건축양식이 아랍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비잔틴 양식에서
영향받은 돔구조이다.
돔이 금박으로 둘러쌓여있다.
황제의 개인실로 1579년 무라트 3세의 지시로 미마르 시난에 의해 건축되었다.
왕자의 궁에 있던 스테인드 글라스인데 너무 아름다웠다.
스테인드 글라스하면 보통 유럽에 있는 성당을 떠올리는데 이곳도 너무 아름답다.
하렘에서 후궁들의 아파트로 쓰였던 건물이라고 한다.
황제의 어머니인 황태후가 자주 거닐었던 마당이기도 하다.
아흐멧 3세 도서관 후면이다.
정의의 탑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축물이다.
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아래엔 위에서 설명한 제국회의 건물로 사용되었다.
이 곳에선 기독교와 이슬람과 관련된 성유물을 전시 중이었다.
사진을 찍는 것을 깜빡해 인터넷에 있는 사진으로 대신한다.
내부 성유물의 사진촬영은 금지되있다.
두 번째 일정인 하기아 이레네 성당으로 향했다. 톱카프 궁전 구역 내에 있다.
하기아 이레네 성당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통치기인 337년으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며
현재 보존된 성당은 740년에 지진에서 재건된 성당을 기본으로 한다.
하기아 소피아랑 바로 옆에 있는데 이 두 성당은 로마제국의 새로운 수도를 만들면서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이었다.
325년에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1978년부터 2014년까지 클래식 공연장으로 사용되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당 내부는 별다른게 없어서 자난은 밖에서 기다리고 나만 보고 나오기로 했다.
성당의 나르텍스 부분이다.
기록에 의하면 하기아 이레네 성당은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고 하는데
앱스의 세미돔에 있는 십자가 빼고는 모든 모자이크가 사라져있다.
740년 재건때 성상파괴운동이 한창이었으니 그때 사라졌을수도 있고
오스만 제국때 없어졌을수도 있고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이 날 하기아 이레네를 방문한 이유가 바로 이 십자가를 보기위해서 였다.
하기아 이레네의 십자가는 성상파괴운동의 경향을 보여주는데 쉽게 말해 신을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하거나 인간 동물 구분없이 살아있는 생명체를 성화나 성상으로 표현하는 것을
우상숭배로 보는 사상이다.
하기아 이레네 성당이 재건된 740년엔 성상파괴운동이 한창 벌어졌던 시기였다.
이후 동서교회 모두에게 성상파괴운동이 이단으로 규정되었는데
보편교회(카톨릭)은 성상파괴운동 이전과 같이 성상과 성화를 모두 사용하게 했고
정통교회(정교회)는 성상파괴주의자들을 배려하고자 성화만 사용하게 했으니
현재 두 교회의 풍습의 차이가 여기서 기인한다.
성당의 보존상태는 심각해 보였는데 천장에서 돌가루가 끊임없이 떨어져내려 그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늦기 전에 보수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기둥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이런걸보면 이런 것들을 없애지않고 몇 백년동안 관리했던 오스만 제국 군인들의
심리가 궁금해진다.
우리나라에도 간혹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집에서 현재 살고 있는 주인들이 원래 있던
장식같은걸 없애지 않고 손님들에게 자랑하곤 했는데 그런 심리일까?
일부가 떨어져나간 이런 십자가를 봐도 궁금해진다.
내부장식이 전부 떨어져나간 것을 보면 앙상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성당의 아치형태를 보니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산타 코스탄자 영묘가 떠올랐다.
기독교 건축물은 석조로 지어졌기 때문에 파괴된 건물을 재건할때 완전히 새로 짓지 않고
기존에 멀쩡한 부분은 남겨놓는다거나 부재를 재활용한다거나 하는일이 많다.
창문 아래 배치된 신트로논(계단형 사제석)은 이스탄불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동로마시대
사제석이다.
계단은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힌 골고다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왼편엔 그리스어로 성서 구절이 인용되 있다.
판토크라토르 모자이크가 있음직할 돔도 일체의 장식이 사라져있다.
지하철을 타고 탁심역에 도착했다.
이스탄불은 지하철이 오래되지 않아 깨끗하고 잘 관리되고 있었다.
탁심광장에 있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의 동상이다.
대통령 시절이 묘사되었는데 조력자였던 이스메트 이노누, 페브지 차크마크 등의 인물도
표현되있다.
바로 다른면에 있는 동상으로 아타투르크의 터키 독립전쟁 사령관시절 모습을 표현했다.
탁심 이스티크랄 거리를 횡단하는 열차다.
치첵 파사주라는 곳인데 유럽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 정문이다.
흡사 궁전의 문에 쓰일 정도로 웅장하다.
아브루파 파사주라는 상점가이다.
Galata Konak Cafe 라는 곳에 들렀다.
갈라타 타워가 보이는 곳이다.
과거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종착역으로 유명한 시르케지역이다.
한때는 이곳에서 유럽까지 철도로 이어져 있었다.
이때는 아쉽게도 보수공사 중이어서 일부가 가려져 있었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니 이 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엄넘치는 외부와 달리 내부 인테리어는 정말 편안하다.
기차를 기다리지 않을때 플랫폼에 서면 그냥 운치있고 좋지만 막상 외국에서 기차를
타려고할때는 항상 조마조마하고 가슴을 졸인다.
자난과 시르케지역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가서 커피를 마셨다.
이 날도 정말 많은 곳을 걸어다녔다.
자난은 집에가고 숙소에 돌아가기 전에 근처를 한바퀴 돌기로 했다.
이스탄불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인것 같다.
지형자체의 장점이 이 곳이 어떤 건축물로 채워져도 무한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게 만든다.
그래서 한때는 많은 세력들의 타겟이었고 지금도 관광객들을 매혹시키고 있는것이 아닐까?
석양과 예니사원 그리고 주야에 관계없이 드리워진 낚시대들이 인상깊다.
이 곳은 구 프랑스인 감옥으로 1850에서 1900년 사이에 지어졌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 당시 프랑스인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여기에 수감했다고 한다.
숙소에서 찍은 술탄아흐멧 사원이다.
어제 돌마바흐체 궁전 기념품점에서 산 아타투르크 대통령이 프린트되있는 수첩이다.
숙소에서 에페스 맥주를 마셨다.
숙소내 룰이 음식은 방에서 먹어도 되지만 맥주는 베란다에서 먹어야 한다고해서
떨면서 마셨다. 그래도 여행 중에는 한번씩 맥주를 마셔줘야 마무리가 되는 것 같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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