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유랑

이 도시는 한글로는 크산티(Xanthi)로 표현하는것 같지만 실제 발음은 산씨(띠와 씨의 중간)라고 부르는데

크산티로 표현하면 마치 내가 가지않은 곳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영 어색하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근처에 있는 이 곳을 발견했다.

담배창고로 쓰이던 건물이라고 한다.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서트라키아 지방의 담배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했는데 이 지역에서

생산된 담배는 유럽 전역으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그리스에서 3번째로 큰 농구장이다.

 

 

 

성 라파엘, 니콜라스, 이레네 성당(그리스어로는 라파일, 니콜라우, 이리니)이라는 곳이다.

멀리서보니 미쳐 다 지어지지않은 성당이 아우라가 굉장해서 찾아갔다.

원래 들어오면 안되는 것 같았는데 어떤 중년의 그리스 여성분이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갔다.

들어가서 성당을 둘러보고 있는데 정교회 신부님께서 오더니 짧은 영어로 친절하게 환영해줬다.

내가 구경하고 있을땐 신부님이 불편한 눈치를 주거나 빨리 나가라는 이야기를 안했다.

나중에 나갈때 보니 신부님이 대문을 잠궜는데 원랜 공사중이라 개방을 안하는 것 같다.

이런 경험은 그리스에 있는 다른 곳에서도 경험했는데 혼자서 지키는 소규모 전시관 같은 경우

내가 마지막 입장시간을 약간 넘겨서 들어왔을때 굳이 불편하게 안하고 살짝살짝 지켜보다가

관람을 다 마치고 나가면 잘가라고하고 문을 닫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그리스식 친절이라는건가...

(물론 이건 예외적인 경우니 독자분들은 그리스를 여행할때 꼭 입장시간을 지켜주시길 부탁드린다.)

사실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신부님들이 대부분 너무 친절했다.

이탈리아에선 관광지를 주로 다녀서 그런지 신부님들과는 이야기할 일이 없었는데

그리스에선 신부님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그리스의 성당도 속전속결로 짓지않고 충분히 시간을 두고 짓는다고 한다.

 

정교회 성당 앞엔 이렇게 그리스 국기와 정교회 깃발(원랜 동로마 제국의 깃발이었다.)이

걸려져 있다.

이것은 그리스가 오스만령이었을때 정교회가 사라진 비잔틴 제국 대신 구심점으로서

국가의 역할을 대신했기 때문인데 그리스에서 정교회의 위치는 민족종교로서의 성격도 있다.

 

 

 

이 건물은 프랑스 남부에서 한번씩 볼수 있었던 양식인 것 같다.

 

 

 

건축물은 세월을 머금을수록 아름답다.

 

 

 

테라스가 보기좋게 꾸며져 있었다.

 

 

Ναός 12 Αποστόλων

 

성 12사도 성당이라는 곳이다.

특이하게도 펜던티브 돔양식이 아닌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정교회 성당이다.

1907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해서 1954년에 완성됐다고 한다.

포스팅을 하면서 느끼지만 그리스에 있는 정교회 성당들은 대부분이 국내 웹사이트는 물론이고

위키피디아나 온라인 백과사전 사이트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혹시 몰라서 여행중에 성당 이름이 적혀있는 안내판을 찍은게 도움이 되었다.

 

 

Ναός 12 Αποστόλων

 

파사드의 모자이크는 중앙에 예수 그리스도가 왼쪽과 오른쪽엔

각각 베드로 성인과 사도 바울이 표현되어 있다.

 

 

Ναός 12 Αποστόλων

 

성당에 들어가니 봉사하시는 아주머니가 반겨주셨다.

그리스에 있는 정교회 성당에 가면 신부님이나 직원분들이 반겨주는 경우가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유의미하게 아주 많았다.

그것은 정교회가 우월하다는 의식이 아닌 진심으로 정교회의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친절함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개신교회를 내가 근처에도 가지 않는 이유가 너무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너무들 쉽게 개종권유를 하기 때문이다.

 

 

Ναός 12 Αποστόλων

 

성당 내부의 프레스코화는 서울 아현동에 있는 정교회인 성니콜라스 대성당의 성화와

비슷했다.

 

 

Ναός 12 Αποστόλων

 

스테인드 글라스는 이 성당에서 가장 돋보이는 특징 중 하나다.

사실 내 블로그에선 성당장식중에선 모자이크 작품을 주로 소개하고 있지만

스테인드 글라스도 중요한 요소이다.

모자이크와 마찬가지로 스테인드 글라스 또한 '가난한 이들의 성서'라고

불릴 정도로 문맹이었던 사람들에게 성서를 대신해서 신앙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스테인드 글라스도 단순히 아름답고 멋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모자이크처럼 종교적인 의미가 내포돼있다.

사진처럼 성모님이 입고있는 옷의 색깔인 파란색은 하늘, 희망, 성실, 경건을 상징한다.

 

 

Ναός 12 Αποστόλων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입고있는 옷색깔인 하얀색은 주로 신을 위해 표현하는 것으로 

순결, 순수함을 의미한다.

 

 

Ναός 12 Αποστόλων

 

'간구' 성화는 주로 모자이크에만 봤는데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진건 처음이었다.

 

 

Ναός 12 Αποστόλων

 

왼쪽에 있는 깃발이 정교회를 상징하는 쌍독수리 깃발이고 오른쪽이 그리스 국기이다.

사실 국기가 성당에 걸려있는게 일반적인 모습은 아닌데 이런 예외적인 특징이

나타난 이유는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 통치하에 있을때 정교회를 구심점으로 정체성과

문화를 유지했고 그리스의 독립에도 정교회가 일익을 담당했다.

쌍독수리 깃발은 후기 동로마 제국을 상징했던 쌍독수리 문양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 당시 쌍독수리 문양이 깃발로 사용된 적은 없고 옷에 자수 등으로

사용되었다.

 

 

Δημοτική Αγορά

 

이 곳은 '디모티키 아고라' 라는 곳으로 육류와 수산물, 과일 등을 파는 전통시장이다.

1935~40년 사이에 지어졌다고 한다.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많은 점포들이 문을 닫았다고 하는데 도시의 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은

과거의 영광을 잃었다고 슬퍼하는듯 하다.

한국같은 경우는 보존을 위해서는 건물을 성격을 바꾸기도 하는데 여긴 건축물이

원래 용도로 사용되게끔 하려는 의식이 있는 것 같다.

건물 내부에도 흑백사진으로 시장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었다.

 

 

Δημοτική Αγορά

 

현대 건축물이지만 반복되는 아치의 모습이 인상깊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치 양식이 처음 도입된 곳은 기원전 4세기에 건설된 로도스섬의 인도교라고 한다.

 

 

Δημοτική Αγορά

 

 

Καθεδρικός Ναός της του Θεού Σοφίας

 

크산티의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이다.

성당의 디자인이 코모티니에 있는 성모희보 대성당을 연상하게 했다.

전통성과 현대의 기술이 만난 완벽한 디자인이고 더 빼고 더할 것도 없다.

그냥 그대로 이 자리에 있으면 충분한 아름다움을 준다.

 

 

Καθεδρικός Ναός της του Θεού Σοφίας

 

돔양식은 기독교 건축에서 발견되는 최고의 성취가 아닐까?

 

 

Καθεδρικός Ναός της του Θεού Σοφίας

 

판토크라토르는 그리스어로 만물의 통치자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지상세계의 왕들처럼 왕관을 쓰거나 왕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돔에 표현된 그리스도의 눈은 인간의 영혼을 직접 들여다 본다.

사전지식없이도 판토크라토르와 마주했을때 신과 마주한 느낌이 들었다.

 

 

Καθεδρικός Ναός της του Θεού Σοφίας

 

가톨릭의 성화는 본래 정교회랑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많은

발전이 있었다.

정교회 미술도 변화는 있었지만 급격한 변화보단 비잔틴 원전을 훼손하지 않는 것을 추구한다.

비잔틴 성화를 보다가 근세 서유럽 성화를 보면 너무 화려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곳은 크산티의 랜드마크인 시계탑으로 오스만 제국때 지어진 것이다.

1972년 크산티현청에 의해 철거될 뻔했다.

이유는 이 시계탑이 도시 한가운데에서 시민들에게 오스만제국 시대를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터키 소수인종단체를 고려하여 시계탑은 보존하는 쪽으로 선회하되

시계탑에 붙어있던 대리석 초생달 장식과 아랍어 장식은 제거되었다.

 

그리스와 터키의 관계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보다 더 험악하다.

지난 일들은 다 잊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고 하기엔 과거의 끔찍한 일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Εκκλησία Αγίου Βλασίου

 

성 블라시우스 성당으로 1838년에 지어진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Οικία Μάνου Χατζιδάκι

 

옛 오스만제국 시절에 지어진 저택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크산티도 다른 트라키아 도시와 마찬가지로 가장 늦게 그리스 영토가 된 곳이다.

 

 

 

여기도 이렇게 폐허가 된 건물들이 있었다.

그리스도 한때 난개발이 심하게 이뤄졌지만 현재는 오래된 건물들을 함부로 없애지 않는다.

오랜 세월동안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재개발은 너무 급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구의 2동, 객관적으로 봐서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푸근하고 정감이 갔던 그 동네가 지금은 구역 자체가 사라지고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것을 보면

마치 전쟁에서 미사일을 투하해서 마을 하나가 완전히 지도에서 사라진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Εκκλησία Αγίου Γεωργίου

 

에클레시아 아기오 게오르기우스 우리말론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이다.

1842년에 지어졌으며 이 성당을 보자마자 오스만 제국때 지어진 것임을 확신했는데

오스만 시대 말기까진 돔형 성당을 짓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 교회 종탑에 다소 소심한

인상을 줄 정도로 작게 표현된 돔의 모습이 그 것이다.

오스만 제국 때 지어진 정교회 건축물들을 보면 외관이 최대한 교회스럽지 않게 만들려고

노력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때도 있다.

그정도로 종탑이 없으면 교회인지 그냥 집인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Εκκλησία Αγίου Γεωργίου

 

외관은 수수했지만 내부는 그래도 측랑도 있고 의자들도 세월을 머금은 모습이었다.

 

 

 

보통 돔이 있는 곳에 판토크라토르 성화가 있는데 이 곳은 돔은 없지만 천장에 판토크라토르 성화를

설치함으로서 돔의 부재를 보완하려 했다.

 

 

 

성당을 버티고 있는 코린토스 열주를 보면 정교회가 단순히 종교적인 장소가 아니고

그리스 로마 문화의 타임캡슐임을 알 수 있다.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종교의 보수적인 면을 봤을때 돌을 던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보수성때문에 그리스도교 전통과 그리스 로마 유산이 지켜진 것이다.

그리고 그 정교회를 온전히 지켜주던 모체가 사라졌을때 그리스 문화도 함께 잊혀져 갔다. 

 

 

Εκκλησία Αγίου Γεωργίου

 

신부님이 크리스챤이냐고 물어서 가톨릭이라고 하니까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가톨릭과 정교회가 한때 원수였던 점, 그리고 대부분의 원인이 가톨릭왕국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을 상기하면 내가 머나먼 동아시아에서 오긴 했지만 그렇게 따뜻하게

환영해주신 것에 대해 존경심이 일었다.

또한 이 곳엔 건축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와서 스케치를 하고 있었는데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메흐메트 파샤 빌딩이라는 곳인데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때

지어진 건물이다.

 

 

 

크산티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나는 크산티하면 이 실루엣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터키식 가옥이 눈에 띄었다. 보존상태도 좋고 잘지은 집이다.

이 가옥은 현재 시립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으나 전시가 비정기적이기 때문에 닫혀있을때가

많다고 한다.

 

 

Λαογραφικό και Ιστορικό Μουσείο Ξάνθης

 

이 곳은 크산티 민속역사 박물관이다.

원래는 담배를 취급하던 거상이었던 Vassilis Kougioumtzoglou의 저택이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 말기는 크산티가 도시로서 가장 번영하던 시기였다.

티켓을 사서 안으로 들어가보자.

 

 

 

트라키아 지역 전통 복장으로 우리가 기억하는 전형적인 그리스 복장과 많이 다르다.

그리스하면 연상되면 헬레니즘적인 복장이 아닌 상당히 이국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Λαογραφικό και Ιστορικό Μουσείο Ξάνθης

 

그리스도 다른 유럽 나라들처럼 지역별로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전통복식도 다 다르다.

 

 

 

다이닝룸이었는데 오스만 제국시대 그리스 부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오스만 제국 말기에 등장한 그리스인 거상들은 향후 그리스 독립에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Λαογραφικό και Ιστορικό Μουσείο Ξάνθης

 

 

Λαογραφικό και Ιστορικό Μουσείο Ξάνθης

 

박물관 내부는 정성스럽게 잘 관리되고 있었다.

 

 

Λαογραφικό και Ιστορικό Μουσείο Ξάνθης

 

호화로운 저택이지만 당시 모든 그리스인들이 이런 집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오스만 제국 말기 법적으로 이교도 신민들의 처우가 다소 나아졌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이 개종하지 않고도 외교관, 상인으로 성공하는 케이스가 많았던건

사실이지만 오스만 제국의 경제적인 파이 자체가 작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부유한 그리스인들은 한정적으로 존재했다.

그런 부유한 그리스인들의 삶을 이 저택에서 느낄 수 있다.

 

 

Λαογραφικό και Ιστορικό Μουσείο Ξάνθης

 

관람을 거의 마치고 나가려고 하는데 그리스인 할아버지가 영어로 어디서 왔냐고 해서

남한에서 왔다고 하니까 젊은 시절에 1960년대때 한국에서 해외자원봉사단체를 통해

한국에 계신적이 있었다고 한국 도시들의 지명을 이야기해주셨다.

할아버지도 일행이 있으셔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다.

언어의 차이로 인해 서로 생각하는 바를 전부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한국에 대해

좀더 이야기하시려는걸 느낄수 있었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헤어질때도 못내 아쉬웠다.

한국엽서나 조그마한 기념품이라도 있으면 드렸을텐데 아쉽게도 가지고 있는게 없었다 ;;

이때 교훈으로 여행을 할땐 한국 관련 기념품들을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Ιερός Μητροπολιτικός Ναός Τιμίου Προδρόμου

 

1839년에 지어진 성당으로 도시에서 오래된 성당 중 한 곳이다.

이 성당앞에 작은 광장이 있는데(사진에 일부가 보인다)

벤치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영어로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한국이라고 하니까

북한 김정은 얘기를 하며 폭탄이 터지는 흉내를 입으로 내며 김정은을 조심하라고 했다ㅋㅋ

유쾌한 아저씨였다.

 

 

Ιερά Μητρόπολις Ξάνθης και Περιθεωρίου

 

 

Εκκλησία Παμμεγίστων Ταξιαρχών Καβακίου

 

 

Εκκλησία Παμμεγίστων Ταξιαρχών Καβακίου

 

1934년에 완성된 성당으로 이곳에는 원래 작은 교회가 있었다고 한다.

크산티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물음표가 인상적이었다.

이걸보니 꼭 뭔가 질문을 해야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드는데 아무말 대잔치같이 질문을

해보자면 서트리키아와 동트라키아는 달라?라는 것이다.

아마 원랜 같았으나 지금은 다르다는 대답이 어울릴 것이다.

갈라진 두 지역에 사는 민족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 지역이 나눠져도 괜찮아?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면 이 세상의 지도엔 너무 많은 모순이 있으니

지금 현실에 순응하고 최대한 더 나쁜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이 곳에선 히잡쓴 사람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Ι.Ν. Αγίου Νικολάου (Church of Saint Nicholas)

 

성 니콜라스 성당이라는 곳이다.

 

 

 

버스를 타고 숙소가 있는 코모티니로 다시 돌아왔다.

여긴 공원인데 숙소에서 이 곳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겨울만 아니었다면 앉아서 여유를 만끽했을텐데 아쉽다.

 

 

 

옷이 더러워져서 무인빨래방으로 왔는데 그리스어를 읽지못해서 세탁기 조작에 어려움을 겪다가

친절한 현지인 남성의 도움으로 세탁을 할 수 있었다.

이 곳은 또한 티비에 그리스팝 방송을 틀어놔서 몇곡을 스마트폰으로 인식해서 나중에 따로

찾아서 들어보았다.

 

 

 

숙소로 와서 스파르탄 맥주를 먹었는데 고대 스파르타의 팔랑크스 부대의 공격처럼

시원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