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유랑

사실 한달간의 여행이었는데 1년 넘게 연재를 해오고 있다.

요즘 뉴스를 보니 아마도 1년은 팬데믹 상황이 지속될 것 같아 보이는데 내년에도 여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기정사실인것 같다.

여행 이야기나 풀어내야겠다...

 

 

차이 가게를 나와서 자난이랑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걸었다.

한때는 수많은 침략자들에게 참교육을 시켜줬던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의 규모는 옛 콘스탄티노플 구역 전체를 감싸고 있다.

지금은 도시개발로 인해 군데군데 끊어진 구간이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풍화로 인한 훼손이 심각했다.

중세 요새도 그렇고 일본 전국시대 성도 그렇고 규모적으로나 심미적으로나 멋있는 요새들이

화약무기의 발전에 의해 두껍고 단순한 모습의 성채로 대체되는 모습을 보면 아쉽다.

 

 

콘스탄티노플을 1000년간 버티게 해줬던 테오도시우스 3중성벽이다.

역사에서의 퇴장까지도 위대했던 명요새이다.

 

 

성벽의 일부가 누군가의 작업실로 쓰이고 있었다.

 

 

오래된 집들을 보면서 터키인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에세이 작품인 이스탄불이 떠올랐다.

파묵은 한땐 세계의 보석이었던 콘스탄티노플을 자신들의 조상인 오스만 제국이 점령한것이

정복인지 몰락인지 고민했다.

 

 

Tekfur Sarayı (Palace of the Porphyrogenitus)

포파이로제니투스 궁전으로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궁전이었던 블라헤르네 궁전 단지의 일부였다.

이 구역에 있는 성당에서 로마누스 성인이 성모님으로부터 은총을 받고

수많은 성가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동로마 제국 아니 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라고 불러야 마땅할 콘스탄티노스 11세가

콘스탄티노플 함락 전날에 하기아 소피아에서 예배를 마치고 가족들과 마지막 만찬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술탄의 동물원으로 쓰이다가 17세기엔 매음굴로 개조되었고

18세기엔 타일을 제작하는 공방으로 쓰여졌으며 19세기엔 유태인들을 위한 구빈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내가 갔을땐 복원작업이 막바지였는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터키에서 쓰는 명칭인 Tekfur Sarayi라는 명칭의 Tekfur은 동로마 제국 황제나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를

뜻하는 말로 로마 황제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Tekfur Sarayı (Palace of the Porphyrogenitus)

지금은 한적하지만 한때는 서양세계를 대표하는 도시의 궁궐이었다.

전체적으로 수수한 느낌을 주지만 그것이 동로마 제국 후기의 경향이었다고 한다.

 

 

Tekfur Sarayı (Palace of the Porphyrogenitus)

사진과 같이 지붕이 재건되어 있었다.

과거엔 지붕도 무너져내린 상태였다.

하지만 워낙 잘 지은 건축물이기 때문에 지금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Tekfur Sarayı (Palace of the Porphyrogenitus)

 

 

Tekfur Sarayı (Palace of the Porphyrogenitus)

성벽을 보수하는 작업중이었나보다.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을 읽어보면 어딜가나 외국인이 있었던 오스만 제국 시절에 비해

터키 공화국 초기의 이스탄불엔 외국인을 찾기도 힘들었고 길거리에도 사람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적인 문화도시 이스탄불을 여행하는 내가 파묵이 살았던 적막과 슬픔의 도시 이스탄불을

상상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정말 순간순간마다 과거의 정취가 되살아 나는듯 했다.

 

 

Mihrimah Sultan Camii, Edirnekapı

미리마 술탄 사원으로 쉴레이만 대제의 딸인 미리마 술탄을 위해 지어진 사원이다.

미마르 시난에 의해 건축되었는데 같은 이름의 사원이 우스크다르에도 있는데 그 곳에 있는 사원이 더 유명하다.

 

 

Bozdoğan Kemeri (Valens Aqueduct)

로마시대에 건축된 발렌스 수도교로 378년에 완공되었다.

현재는 '회색 매의 아치'라는 뜻의 보즈도간 케메리라는 터키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지금은 원래 규모에 비해 80% 정도가 남아있다고 한다. 그래도 충분히 길다.

 

 

 

 

Zeyrek Camii (Monastery of the Pantocrator)

제이렉 이슬람사원으로 원랜 판토크라토르 수도원으로 쓰이던 건축물이다.

현존하는 동로마 시대 건축물 중에선 하기아 소피아 다음으로 큰 규모이다.

 

사실 이스탄불에서 동로마시대 성당들 중에 하기아 소피아와 카리예 박물관(코라 수도원)이

유명하지만 동로마시대 성당이었던 모스크들이 15개가 넘는다.

 

이들 성당들은 모스크로 개조되어 실내에 성화들은 모두 없어졌지만 그래도 희미한

흔적이나마 감상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Karaköy Palas

카라쿄이 팰리스로 1910년 이스탄불 태생의 이탈리아인 건축가인 지울리오 몽게리의 작품으로

비잔틴 건축요소였던 반원형의 아치가 표현되었다.

지울리오 몽게리는 오스만 제국 말기와 터키 공화국 초기 많은 건축물을 디자인했고

터키 1세대 건축가들의 육성에 기여했다고 한다.

 

 

갈라타 타워앞에 실크로드 우호협력 기념비가 있었다.

기념비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거기 있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다들 알았을 것이다 하하!!

 

 

주 터키 한국문화원이 문화교류를 위해 많은 일을 한다고 들었다.

 

 

Galata Kulesi

동로마 제국이 아닌 제노바 공화국에서 세운 건축물로 1348년에 만들어졌다.

원래는 메갈로 피르고스라는 타워가 있었으나 4차 십자군에 의해 무너졌다고 한다.

 

 

1892년에 건축된 옛 터키 중앙은행 본사 건물이다. 원랜 오스만 중앙은행 본사였다.

은행건물들이 늘어선 이 거리는 Bankalar Caddesi라고 불리는데 초기 터키 공화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곳들중 하나이다.

 

 

이 곳의 서양식 건물들은 유럽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터키도 한국도 왕정에 의한 서구화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행을 시작했을때는 살이 좀 쪄서 허리띠없이 다녔는데 10키로 넘게 빠지면서 허리띠가 필요하게 되서

지하상가 상점에 들러 허리띠를 구입했는데 자난이 흥정을 해줘서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수명이 다 할때까지 썼다.

덕분에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1년동안 이스탄불에서 느낀 좋은 기분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갈라타 다리에서 쉴레이마니예 모스크가 보였다.

저녁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밝았다.

 

 

터키 디저트인 바클라바이다.

아주 풍부한 맛이 난다.

터키를 대표하는 디저트라 유럽국가들에가도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터키에서 먹는게 가장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