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8 그리스 - 테살로니키: 아라차 이마렛 사원, 비잔틴 목욕탕, 예디쿨레
1484년에 완성된 이슬람 사원으로 오스만 제국 시대에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이다.
터키인 여행자들이 도시를 관광할 때 이 곳을 많이 들른다고 한다.
이 곳을 돌아서 정문으로 들어가려하는데 개가 달려들어서 깜짝 놀랐는데 다행히 주인이 제지를 시켰다.
사원 안에선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곳은 내가 방문했을땐 입장료가 없이 무료였는데 지키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들어갔다.
들어가니 아무도 없이 나 혼자만 전시회와 건축물을 감상했다.
나중에 직원분을 볼 수 있었는데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원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직원분이 한국어로 작성된 이 포스팅을 볼리 없겠지만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원랜 이슬람사원에 칠해져 있었을 아랍어 서예와 문양이 많이 훼손되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훼손이 심각해 보이지만 얼마남지 않는 부분도 아름다웠다.
참고로 그리스의 무슬림들과 터키인들, 터키의 민족주의 정당 MHP는 이 곳을 다시 이슬람사원으로 복원할 것을 그리스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터키 정부는 이에 대한 보상으로 무엇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하기아 소피아마저 다시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는데 말이다...
메카가 위치한 방향을 알려주는 미흐랍도 남아있었다.
이스탄불에 있던 카렌데르하네 모스크(테오토코스 키리오티사 성당)에 갔을때 딱 이 정도 남아있는 성당시절 프레스코 화를 보기위해 일부러 방문했던게 떠올랐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거 하나 보려고 한참을 걸어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뭔가 특별하게 좋아하는게 있는 분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래된 오스만 양식 주택이다.
그리스에서 이런 집들이 많이 없어졌다지만 아직도 상당히 남아있다.
많은 비잔티움식 목욕탕이 도시에 지어졌지만 남아있는건 이 곳 뿐이다.
1940년까지 목욕탕으로 기능했다고 한다.
가끔 역사 유적은 퍼즐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1000년 전엔 로마제국 어느 도시에나 목욕탕이 있고 원형 극장이 있고 했겠지만 지금은 목욕탕은 이 곳 테살로니키에 그리고 원형 극장은 또 다른 도시에 있는걸 참고해야 하나의 온전한 도시의 모습을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는 이런 모습이라고 한다.
오스만식 분수대가 있었다. 아랍어 부조가 선명한데 보존 상태가 좋아보인다.
도시를 굽어보는 비잔티움 요새에 오스만 제국 시대에 지어진 탑이다.
문위의 팀파눔엔 아랍어로 된 동판이 붙어있었겠지만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일몰이 지난뒤라 이 곳으로 야경을 찍으러 오면서 나름 경계를 하면서 왔는데 다행히 아주 안전했다.
테살로니키 비잔티움 성벽에서 바라본 도시의 모습이다.
로톤다 영묘를 중심으로 해안까지 길이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다.
도시의 형태가 똑같은건 아니었지만 나중에 터키의 이즈미르(원래 이름은 스미르나)를 갔을때 도시의 분위기가
테살로니키가 많이 생각났다.
아무래도 같은 민족이 만든 도시이기 때문에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
테살로니키에도 콘스탄티노플처럼 전차경기장인 히포드롬이 있었다.
이탈리아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경기장이 나보나 광장이 되었다면 이 곳은 차도가 되었다.
이 도로가 옛 히포드롬의 형태를 따라 만들어진 곳이다.
로마, 이스탄불, 테살로니키 모두 히포드롬 경기장은 사라졌지만 유구의 일부를 보존하고 그 곳에 원래 히포드롬이 있었다는 사실이 잊혀지지 않도록 기념한다.
갑자기 서울에 있던 동대문 야구장이 생각난다. 만들어진지 100년 가까이 된 경기장이었는데 하다못해 야구장 구획만이라도 남겨놨어야 하는데 아쉽다...
테살로니키 성벽으로 그 역사가 3세기까지 올라가며 5,6 세기 야만인들의 습격과 10세기 사라센인들의 점령, 13세기의 재건등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를 거듭한 요새이다.
원랜 콘스탄티노플의 테오도시우스 성벽처럼 2중 성벽으로 되있었고 성벽 간 거리가 10미터였다고 한다. 지금은 한겹만 남아있다. 그리스도 터키처럼 도시계획을 위해 성벽의 일부를 제거했다고 한다.
한때는 성문이 여러개가 있었지만 현재는 이 곳 북문만이 현존한다.
이 곳을 걷다가 5유로를 주었다. 어두운 밤길에 누가 떨어뜨렸나보다.
엡타피르지오 요새로 중앙에 있는 건물은 오스만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터키어로 예디 쿨레라고 불렸다.
뒤에 있는 성벽은 이곳에 자리했던 아크로폴리스의 일부였고 왼쪽의 성벽은 동로마제국 시대에 추가된 성벽이다.
위에서 찍은 야경이 이 성채 위에 올라가서 촬영한 것이다.
요새 북문 근처에 비잔티오라는 카페가 있었다.
잠시 들러서 프라도 에스프레소라도 있으면 마시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으면 호스텔의 다른 투숙객들에게 폐가 될것 같아서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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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8 그리스 - 파나기아 찰케온 성당, 로만 아고라, 아요스 디미트리오스 성당
4세기에 지어진 분수대의 유구로 고대 로마제국에서 동로마 제국으로 바뀌는 과도기에 지어진 것이다.
오스만 제국때도 그대로 사용되었고 그리스 독립 후에도 1960년대까지 사용됐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지어진 목욕탕으로 그리스 독립후엔 'Phoenix bath'라는 이름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지나가는데 하맘 정문 앞에서 롬인(집시) 소년이 오줌을 싸고 있었다.
한때는 오스만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가와 장인들이 이 곳을 만들었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스프레이를 뿌리고 노상방뇨를 하는 곳이 되버렸다. 기분이 더러웠다.
관리소홀일수도 있고 그냥 방치해놓은 것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문화재를 조리돌림하면서 욕을 보이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이러한 방치상태가 그리스라는 나라의 문화적인 격에 맞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그리스인들은 그 정돈 아니겠지만 우리 한국사람들은 일제강점기 건축물을 철거할때 일본에게 한방 먹였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 사실 그리스인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부터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한국의 일제강점기 건축물들이, 그리스의 오스만 제국 건축물들이, 그리고 터키의 비잔틴 시대 건축물들이 각 나라의 정부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억의 장소로서 활용되길 바라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생각일까?
'파나기아 찰케온' 성당으로 1028년에 지어진 성당이다.
서쪽 입구의 비문에 새겨져 있는대로 이 곳은 성당이 지어지기 전에 본래 이교도(로마 다신교)들의 의식이 치러지던 곳이었다.
성당이 동로마 시대에 어떤 이름으로 불렸는진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오스만 제국 시대엔 이슬람사원으로 개조되어 카잔질라 자미(Kazancilar Camii)로 불렸는데 구리 대장장이의 사원이라는 뜻이다. 현재 이름인 파나기아 찰케온(구리 대장장이의 성모교회)도 이슬람사원일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3개의 돔이 있으며 콘스탄티노플에 지어진 성당들과 동일한 구조를 보여준다.
나르텍스 팀파눔에 동로마 제국 시대의 프레스코화가 남아있다.
지금은 비어있었는데 과거의 공구용품점 같았다.
오래전에 자취를 감춘 아크릴 간판의 모습이 향수를 불러왔다.
로마시대에 지어진 아고라 유적이다.
원래 있었던 아고라 구역보다 축소된 부분만이 남아있다.
동쪽엔 조폐국과 도서관, 극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로마제국이 자랑했던 선진문명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 전에는 마케도니아 왕국이 있었겠고 말이다.
솔직히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그리스가 역사의 전면에서 활약했던 황금기와 비교해서 몰락했다는 느낌보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모습에서 왜 그리스의 문화가 서양과 중근동까지 퍼져 나갔는지 잘 느낄 수 있었다.
남쪽엔 상점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요스 디미트리오스 성당으로 고대 로마시대 목욕탕이 자리했던 곳으로 디미트리오스 성인이 순교한 곳이다.
이후 5세기에 성당이 지어졌고 전소되었지만 원형을 살려 7세기에 재건된다.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게 정복당한 뒤로 1493년에 성당은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는데 이때 바뀐 이름이 '카시미예 자미(Kasimiye Camii)'다. 카시미예는 디미트리오스 성인의 이슬람식 이름으로 기독교와 이슬람 모두에게 존경받았던 성인이라고 한다.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고나서도 기독교도들이 디미트리오스의 무덤에서 참배하는 것이 허용됐다고 한다.
1912년 도시가 그리스령이 된후 카시미예 자미는 다시 성당으로 복원된다.
1917년 대화재로 인해 성당의 상층부가 대부분 전소되게 된다.
대화재에 관해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데 원래 불이 기독교인 마을인 동쪽으로 옮겨붙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아요스 디미트리오스 성당으로 불이 옮겨붙어 몇시간동안 타게 된다.
그런데 성당이 전소되면서 불은 기독교인 마을 방향이 아닌 바다 쪽인 남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사람들은 디미트리오스 성인이 다시 한번 자신을 희생해 기독교인들을 구한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 후 복원작업에서 1층과 2층의 일부, 그리고 남아있는 건축부재들을 최대한 보존해서 복원해서 현재에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화재로 인해 오스만 제국에 의해 회반죽으로 덮여있었던 모자이크가 드러나게 됐다고 한다.
현재 모습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7세기에 지어진 성당을 기본으로 한다.
구 동로마 제국령, 그리고 현대 그리스의 정교회 성당들은 몇몇 경우를 빼면 그 원형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정교회 자체가 성당을 개조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신중하고 오스만 제국이 비잔틴 성당들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할 때에도 미나렛을 새로 추가하는 것을 제외하면 건물의 구조 자체를 없애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물론 개조될때 내부에 있던 모자이크, 성화들은 예외적인 몇몇 곳을 제외하면 대체로 전해지지 않는 편이다.)
성당 지하에는 고대 로마시대 목욕탕 유적과 카타콤베가 있다고 하는데 내가 갔을땐 운영시간이 끝나서 들어갈 수 없었다.
대화재로 전소된 성당의 모습이다.
로마의 산파올로 푸오리 데 무라 대성전도 화마를 입었을때 이렇게 열주와 앱스만 남고 전소됐었다...
성당 앞 광장의 바닥은 본래 유대인 묘지의 석재로 지은 것이다.
한때는 유대인 인구가 테살로니키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유대교를 믿는 그리스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치 독일의 점령기간동안 95%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학살당했다고 한다.
이때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유대인들의 묘지를 파괴하고 그 곳에 있던 비석들을 반출해서 망자들의 이름을 지우고 사용한 것이다.
현재의 테살로니키 아리스토텔레스 대학교가 위치한 자리에 유대인 묘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유대인 묘지였다고 한다.
그런 역사적인 배경때문에 유대인들도 이 곳을 찾는다고 한다.
조상들의 묘비 위를 걸으면서 말이다.
성당의 서쪽 측면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성당의 후면부로 여기도 다른 고대 성당들처럼 플라잉 버트레스 역할을 하는 버팀목이 설치되어 있었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정말 교과서적인 정통 바실리카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917년 대화재의 흔적을 알 수 있는데 1층의 아치가 군데 군데 빠져있고 2층 기둥은 새로 교체된 것이다.
일부러 새로 지은 부분은 누구나 보면 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당의 증축을 치적삼아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려고 하기보다 초기 성당의 원형을 지켜내려고 노력한 사제들에 의해 오늘날 사람들은 1500년전에 지어진 성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있는 성당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테살로니키의 '비잔틴 문화 박물관'에 있던 아요스 디미트리오스 성당에 있던 아치와 열주이다.
비잔틴 문화 박물관에 대해선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겠지만 꼭 방문해볼 필요가 있는 곳이다.
앱스에서 테오토코스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었다.
천사들이 성모님과 아기 예수를 축복하고 있다.
하얀색으로 회칠한 부분이 전소되고 새로 지은 부분이다.
그 아랫부분에 정교하게 원형의 아치가 결합돼있는데 복원작업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복원작업이 1917년에서 1949년까지 30년이 넘게 걸렸다는데 얼마나 신중하게 복원이 이뤄졌는지 알 수 있다.
성 디미트리오스의 유해라고 한다.
많진 않지만 성화가 곳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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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8 그리스 - 테살로니키: 로톤다, 성 판텔레이몬 성당, 아야 소피아 성당
얼마 전 유럽 입국시에 2주격리가 해제됐다고 한다.
하지만 출국을 위해 72시간내 PCR 테스트 영문 증명서를 준비하려면 하루가 걸리는 점,
그리고 귀국시에도 해외에서 PCR 테스트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국으로 격리없는 입국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틀의 시간이 깨진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갈지말지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을 듯 하다.
갈레리우스 황제의 영묘로 조성됐다가 다신교 신전으로 쓰였던 로톤다를 볼 수 있었다.
고대 테살로니키의 도시계획은 이 곳 로톤다를 심장부로 계획됐다.
로톤다 왼편엔 이슬람 사원 당시의 뿔모양의 지붕이 제거된 미나렛이 남아있다.
아쉽지만 입장시간이 지나 들어가볼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테살로니키에서 하루가 아니라 이틀로 스케줄을 잡을걸 후회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아쉬움이 남는게 다시 방문하는 동기가 될 수도 있으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여행 추진력 하난 확실하니까 꼭 다시 가볼 기회가 있을 거다.
반원형의 앱스엔 예수 승천이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제거되어 있는데 성당이 이슬람사원으로 개조됐을때 자주 일어나던 조치로 이슬람에서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표현할 수 없다는 교리에 근거한다.
전체적으로 훼손이 있지만 그래도 꽤 많은 모자이크가 남아있다.
성 판텔레이몬 성당으로 정교회의 건축양식이 자리잡힌 이후에 지어진 성당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같다.
돔이 올려져 있지만 보는 이를 압도하지 않고 친근한 느낌이다. 그러니까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오스만 제국 시대엔 이슬람사원으로 개조되어 '이샤키예 자미(Ishakiye Camii)'로 불렸는데 이사악의 사원이라는 뜻이다.
이 성당 또한 콘스탄티노플의 성당들과 차이가 없다.
왼쪽에 사진이 짤렸지만 굴뚝같이 생긴 부분이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었을때 첨탑인 미나렛이 있던 기단이다.
내부는 보시는 바와 같이 성화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성당에서 몇 안되는 비잔티움 프레스코화가 남아있다.
훼손이 심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구 오스만제국령에서 이슬람사원으로 개조되는 과정에서 대부분 성화 자체가 남아있지 않고 멸실된 사례가 많아 이 정도는 오히려 보존이 잘 된 편이라 할 수 있겠다. 최소한 성화 인물들의 형태는 남아있으니 말이다.
아요스 아타나시오라는 이름을 가진 성당이다.
성당 외부 모습에서 비잔티움적인 특징이 없어서 오스만 제국 때 지어진 성당인 것으로 추측했는데 내 예상이 맞았다.
딱 봐서 정교회 성당인데 돔이 없고 규모가 작으며 교회 종탑이 빈약하게 서있다면 오스만 제국때 지어진 곳일 확률이 높다.
아야 소피아 성당 정문인데 이슬람사원으로 개조되었다가 다시 성당으로 원복됐을때 새로 지어진 문이다.
783년에 지어진 성당으로 테살로니키를 대표하는 곳이다.
성당이 지어지기 전에는 고대 로마시대 건물과 초기 기독교 성당이 있었다고 한다.
1453년 동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1492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어 카시미예 자미(Kasimiye Camii)라고 불리게 된다.
정교회 아이덴티티의 뿌리인 하기아 소피아 성당과 같은 이름이기 때문에 각별하게 여겨지는 곳이다.
이전의 포스팅에도 언급했지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성당이라면 성 베드로 대성전이나 라테라노 대성당이 있겠지만
그리스를 대표하는 성당은 없다.
과거엔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이었지만 오래 전에 그 곳은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됐기 때문이다.
2019년 이스탄불에 있는 하기아 소피아 박물관이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됐을때 항의시위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같은 날 그리스 전역에 있는 성당들이 하기아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을 애도하는 종소리를 울렸다.
모스크로 사용될 당시의 사진이다.
위에 사진과 반대 방향에서 촬영된 것이다.
앱스엔 콘스탄티노플의 하기아 소피아와 같이 테오토코스 모자이크가 장식되어 있다.
11세기에 만들어졌는데 19세기 오스만 제국 시대에 아랍어 비문과 물감으로 덮여졌는데 이때 모자이크가 큰 손상을 입었고 1907년에 빗물로 재차 훼손되게 된다.
위쪽의 십자가 모자이크는 성상파괴운동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모자이크도 훼손된 부분을 대대적으로 보수한 것이다.
다만 보수한 부분이 비잔티움 시대에 만든 원본보다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성모님 얼굴 곳곳에 위화감과 부자연스러움이 보인다.
성당 종탑의 모습인데 하층부에 이슬람사원일때 새겨진 연꽃모양의 오지 아치가 남아있다.
기실 이 부분을 빼면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됐을때의 흔적은 특별히 신경쓰고 관찰하지 않는 한 알아차리기 힘들다.
성당의 우측엔 미나렛도 있었는데 성당으로 원복되면서 철거되었다.
터키인들은 미나렛을 제거한 것에 대해 상당한 유감을 가지고 있는듯 하다.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었을때 종탑은 지붕모양이 현재와 달랐는데 이때 사용된 지붕은 성당 안뜰에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종탑에 있던 지붕이다.
이 안뜰때문에 테살로니키 대화재때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곳도 이슬람사원으로 사용됐었기 때문에 훼손이 심하다.
라벤나의 비잔틴 모자이크가 비기독교 문명에 의해 훼손되지 않아 완벽한 보존상태를 자랑하고
이스탄불의 모자이크가 현재 남아있는 부분만 살린 느낌이라면 테살로니키의 성화들은 그 중간정도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꼭 복원해야할 부분들은 모자이크를 채워넣지만 사라진 부분에 상상으로 모자이크를 복원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돔위에서 12사도들과 성모님, 천사들이 지상의 교회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됐을때 모습인데 훼손이 심각한 모습이다.
또한 이슬람 사원일 때 장식이 현재엔 전부 제거되고 지워졌음을 알 수 있다.
테살로니키 하기아 소피아의 돔은 구형은 아니고 이전의 과도기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아래엔 성모님과 천사들이 있고 양쪽에 12사도가 모자이크로 표현돼 있다.
천장의 그리스 비문은 사도행전 1장 11절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중략)"가 인용돼 있다.
돔의 모자이크를 보는 이들이 잠시 갈릴리 사람이 되는 셈이니 재미있다.
9세기에 만들어진 예수 그리스도 모자이크이다.
판토크라토르가 아닌 예수 승천이 표현되어 있다.
얼굴 부분이 손상됐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복원을 거쳐 완벽한 모습으로 구현되었다.
테살로니키 비잔틴 문화 박물관에 전시돼있는 14세기에 만들어진 예수 그리스도 이콘으로 본래 이 곳 아야 소피아 대성당에 있던 것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8세기에 지어졌지만 이 곳에 있는 고대 그리스식 기둥들은 5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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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8 그리스 - 테살로니키: 갈레리우스 궁전 유적, 갈레리우스 개선문
비잔티움 성벽의 기단을 피해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성벽의 원형복원과 개발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갈레리우스 궁전의 일부였던 앱스형의 홀 유적이다.
원래는 이런 모습이었다고 한다.
유적들이 쇠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여기서 더 무너지지 않게 치밀한 보존처리가 돼있다.
부분적으로 보수를 한 흔적이 보이는데 고대 유적에 대한 복원 사항을 다룬 베니스 헌장에 가장 충실한 복원으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주요 사항으로는 가설에 근거한 재건은 피하고 개입은 최소화 할것, 유적의 틈새는 복원되야 함, 이전에 있었던 개입에 대해 비판적일 것 등이다.
지금 보시는 사진도 그냥 남아있는 부분을 대충 정비해놓은게 아니고 남아있는 부분이 더 풍화, 훼손되지 않게 같은 재료로 위쪽을 마감해놓은 상태이다.
그리고 보존을 위해 같은 재료로 마감해놓은 부분은 추후 있을지도 모르는 복원을 위해 언제든지 제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곳은 갈레리우스 궁전의 목욕탕이 있던 곳이다.
여긴 목욕탕의 응접실이 자리하던 지점이다.
원래 모습은 이러했다고 한다.
따뜻한 물 공급을 위해 아궁이에서 불을 떼서 파이프를 통해 벽과 바닥, 욕조를 데웠다고 한다.
나는 이런 복원도를 보면 주로 하는 상상이 4세기에 이 곳에서 목욕을 하던 사람이 현대로 와서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실망할지 아니면 이렇게나마 남아있는 것에 기뻐할지 궁금하다.
내 생각엔 그 당시에도 지진이나 화재가 빈번했으니 후자일 것 같다.
'구세주 성당'이란 이름을 가진 작은 성당이다.
도시에 있던 거의 모든 성당은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됐지만 이 성당은 오스만 제국에 의해 개조당하지 않았는데 이스탄불에 소재한 몽골의 성모마리아 성당처럼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 정도 예외로 봐준 것이다.
그리스 독립 이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된 성당들은 모두 정교회 성당으로 원복되었다.
성당이 건축된 1350년은 부활한 동로마 제국이 빠르게 몰락하던 시기이다.
돔엔 예수 승천을 그린 프레스코화가 남아있다.
세월로 인해 천사들의 형상이 희미해져 윤곽만 보일 뿐이다.
3세기 페르시아 사산제국을 상대로 승전을 거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갈레리우스 개선문이다.
한때는 기둥만 8개로 지금보다 더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지만 현재는 동문만이 남아있다.
원래 모습의 추정도이다.
좌우로 늘어서 있던 수 많은 열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것은 고대에 지어진 성당을 구성하는 열주에 해답이 있다.
성당건축에 있어서 언제나 석재가 풍부한게 아니었기 때문에 기존의 이교도 신전이나 공공건물에 사용되던 기둥을 성당 건축에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구 그리스 로마 세계의 성당에 있는 고대 그리스식 열주를 볼때면 그것이 특정 종교의 건축물이라기보다 그리스 로마 문화의 결정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엔 두 가지가 대립되는 것처럼 그려졌지만 로마제국이 망할때까지 두 문화가 동시에 사랑받았다.
고대 그리스 신앙이 주류 종교는 더이상 아니었지만 천년 동안의 믿음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 민간에선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마치 개신교나 천주교 신앙을 가진 한국인들도 오래된 불교 사찰을 방문하면 경건함을 느끼는 것같이 말이다.
3세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조가 풍화로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위에서 2번째 패널이 사산제국과 전쟁을 벌이는 갈레리우스 황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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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선 모양을 한 배가 바로 운영되고 있는데 칵테일을 마시면서 바다를 한바퀴 운항한다고 한다.
이런 배들이 테살로니키에 3척이 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장기여행이라 금전적으로 이런데서 돈이 조금씩 소진되는게 부담도 되고 시간도 부족해서 과감히 패스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상이 해안가에 설치되어 있었다.
내 블로그엔 동로마 제국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사실 그리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건 자신들이 살았던 곳에 존재했던 그리스계 도시국가나 섬에 존재했던 문명의 역사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가장 사랑받는건 이 동상의 주인공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활약했던 마케도니아 왕국의 역사다. 여기저기 모래알처럼 분열돼있던 그리스 국가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그리스 지역과 동방 지역의 질서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비록 돈과 시간이 한정돼있어서 가지 못했지만 다음 번 여행 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태어난 도시인 그리스의 페라 지역을 꼭 가보고 싶다. 그리스가 많은 섬들, 영토가 길게 늘어져 있기 때문에 영토 크기보다 실제 여행을 하는건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린다. 그리스 사람들은 죽기 전에 그리스 지역을 모두 여행하는게 꿈이라고 한다. 그리스가 관광객들에겐 '산토리니국'이라고 불려야 할 정도로 산토리니와 아테네에 편중돼 있지만 알아보면 알아볼 수록 저평가된 도시가 참 많다.
물론 모든 그리스 도시가 유적지가 채일정도로 많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대도시들도 경제성장기에 난개발이 심각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역사적인 배경만으로도 한번쯤은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들이다. 비록 역사에서의 존재감보다 초라해서 실망할지라도 그것도 여행의 한 부분이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배워가는게 있을지도 모른다.
흔히 화이트 타워라고 불리는 건축물로 그리스어로 레프코스 피르고스라고 불린다. 1535년에 완성됐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건축된 탑으로 같은 위치에 동로마제국시대인 12세기에 건축됐던 탑이 있었다고 한다.
독일 역사학자 프란츠 바빙거는 이 곳이 오스만 제국의 건축가인 미마르 시난이 설계했다고 추측했다.
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부탁했더니 "No"라고 해서 "뭐지? 이 싸가지는..."하고
그 여성과 같이 온 일행인 다른 여자한테 부탁을 했더니 흔쾌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고맙다고 하고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니까 아르메니아에서 왔다고 했다.
얘기 끝내고 내 갈길을 가려고 하는데 아까 사진찍어주는걸 거부한 여자가 오더니 미안하다고 하면서 자기가 영어를 잘 못해서 내가 자기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뜻으로 오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경쓰지 말라고하고 자리를 떴다.
역사적인 사건으로나 접하던 아르메니아 인들과의 첫 조우라 할 수 있는데 처음엔 그닥 유쾌한 만남은 아니었지만 솔직하게 사과하는 모습에 근본까지 나쁜 사람들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원래 나는 전망대에 큰 흥미는 없어서 일본여행갈때 천수각 빼면 잘 안가는 편인데 화이트 타워는 꼭 한번 들러보고 싶었기에 티켓을 사서 들어갔다. 혹시 내가 잘 모를 거라고 염려했는지 입구에 있던 직원분이 이 곳은 도시를 대표하는 역사적인 기념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럴땐 그냥 들어야지 예를 들어 서울에 온 미국 관광객이 가이드가 설명을 하는데 "네... 저 4대궁 다 알아요... 경희궁은 복원이 되면 좋을텐데 아쉬워요" 이러면 좀 웃기잖아? ㅎㅎㅎ
계단이 완만하게 지어져있어서 올라가는게 그리 힘들지 않다.
테살로니키에서 출토된 도자기가 전시돼있었다.
바닥재로 쓰이던 모자이크가 전시돼 있었다.
도시의 역사를 설명하는 전시품들이 설치돼 있었는데 주로 오스만 제국 시대가 많았다.
그리스에서 오스만제국 시대의 역사에 대해선 대체로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 같다.
현재는 이즈미르라는 이름으로 개명된 스미르나가 그리스인들에게 아직도 크나큰 향수로 남아있는 것처럼 셀라닉(테살로니키의 오스만 시대 이름) 이라는 이름만으로 많은 터키인들을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리스에 오기전 이스탄불의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셀라닉으로 간다고할때 좋은 도시라고 하면서 그가 보였던 반응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약간의 상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청개구리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한국에서 일본식 가옥을 찾고 터키에서 비잔틴 제국의 흔적을 찾고 반대로 그리스에서 오스만 제국의 잔재를 찾는다.
이런 과거의 잔재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막상 방문을 했을땐 그 아우라가 어슴푸레하게 남아있을 뿐이어서 상상력과 주의력을 동원해야 겨우 알아차릴 만한 유적들이 많았다. 심지어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고해도 말이다.
이 곳도 오스만 제국이 만든 건축물이지만 투르크인들이 떠났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 시대 피의탑이라고 불리던 서슬퍼런 분위기는 남아있지 않다.
탑의 최상층인데 간단한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어서 기념엽서를 2장 샀다.
이 중에 한 장은 한국으로 돌아가서 평소 잘가는 카페 사장님께 드렸다.
옥상으로 올라가면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진다.
사실 제 2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이 없다는 점은 단점이지만 그건 내가 다른 나라의 교통시스템에 너무 익숙해서 일 것이다. 나는 도시에 지하철이 없으면 비록 우리나라라도 왠만하면 걸어다니려고 한다. 이유는 실수로 버스를 탈때 방향을 반대로 타면 안타느니만 못하기 때문이다ㅎㅎ
저 앞엔 망망대해로 펼쳐지는 것같이 보이지만 저기도 드넓은 에게해의 한쪽 귀퉁이일 뿐이다.
마케도니아 조선소로 큰 규모는 아니지만 테살로니키는 고대 때부터 배를 만들던 도시라고 한다.
이 곳의 조선회사들은 큰 대기업보다 중소규모의 가족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국립 북부그리스 극장이다.
건물외관을 대리석으로 장식한게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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