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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아 소피아 박물관의 모스크 전환에 대해

Frias 2020. 7. 20. 00:44

 

2020년 7월 10일 터키의 타이이프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하기아 소피아를 모스크로 변경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하기아 소피아 박물관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는 하기아 소피아 모스크이며 박물관 당시 받았던 입장료는 더 이상 없다.

 

2년 전이었다.

나의 첫 유럽여행때 터키인 친구의 인도로 하기아 소피아를 구경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역사적인 사실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마력을 지니고 있는 이 건물을 구경하고 나오면서

터키인들이 하기아 소피아에서 이슬람과 기독교 유산을 공존시키는 것에 대해

세속주의 터키인들이 가지고 있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중의 하나인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은

1453년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하면서 모스크로 사용되다가

1935년 터키공화국의 국부이자 초대 대통령 아타투르크에 의해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우선 왜 하기아 소피아를 박물관으로 만들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터키 공화국의 정교분리 세속화 정책과 더불어 1923년 터키 그리스간 인구교환에서 제외된

50여만명의 그리스인이 터키에서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통합할 필요가 있었는데

바로 하기아 소피아를 모스크에서 박물관으로 탈바꿈시키면서 그들을 달래고

더 나아가 이슬람과 기독교의 공존을 추구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서방세계로 편입을 의도한 것이다.

 

하기아 소피아가 박물관으로 바뀌면서 오스만제국 시대에 회칠로 덮여있던 모자이크들이

복원되어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왜 오스만제국이 성화 모자이크들을 없애지 않고 회칠을 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시엔 모자이크를 다 제거하는 것보다 회칠하고 그 위에 이슬람 장식으로 덮는게

더 간단한 방법이었다.

그 결과 동로마 시대의 모자이크들이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회칠을 하지 않은 모자이크들은 모스크의 인부들이 하나둘씩 떼내서 부적으로 팔아먹었다고 한다.

성당의 모자이크 조각들은 신성한 기운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에르도안이 하기아 소피아를 모스크화 한 것은 내부 결속용으로 보인다.

최근 몇년간 에르도안과 이슬람주의 집권여당인 정의개발당이 경제와 외교 둘 다

실패하면서 점차 등을 돌리고 있는 지지층을 선동하려면 이것만큼 좋은 아이템이 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나 영국인들은 더 이상 제국을 꿈꾸지 않지만 집권여당을 지지하는 터키인들에게

오스만제국의 부활은 영원한 지상과제이다.

반면에 터키의 세속주의자들은 이미 이스탄불에만 3000개의 모스크가 있는데 에르도안의 인기를 위해

저런 무리수를 감행해야 하냐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만약 에르도안이 하기아 소피아의 모스크화로 유럽인들의 분노를 의도했다면

기획단계서부터 실패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서유럽에선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감을 표명한것외엔 별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그마저도 교황으로서 동서교회일치의 의무를 한 것이라고 보면 그저 할일을 한것 이상의

워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12세기에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 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정교회는

가톨릭을 믿는 서유럽인들에게 정서적으로 상당히 먼 존재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동서교회의 결합도 시도했지만 서로의 차이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어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 제국에게 함락되고 모스크화 되면서

하기아 소피아는 자연스럽게 서유럽의 기독교 세계에서 잊혀지게 되었고 말이다. 

십자군들이 만든 예루살렘 왕국이 성지 예루살렘을 다시 무슬림들에게 뺏겼을때

손바닥 뒤집듯이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금지하고 로마 성지순례로 대체한 것이 서유럽이다.

사실 가톨릭 역사 전체로 보면 상당히 나중에 지어진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탔을때

받았던 세계적인 관심에 비하면 하기아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은 서유럽지역에는 별 반향이 없다.

단지 정교회를 믿는 그리스와 러시아만 화나게 했을 뿐이다.

특히 그리스에선 테살로니키에 있는 터키의 국부 아타투르크의 생가를 그리스인 학살 기념관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판이다.

하지만 반서방 정서를 가지고 있는 터키의 이슬람주의자들이 그것까지 신경쓸리 없을 것이다.

 

하기아 소피아가 모스크로 전환되어선 안되는 이유를 3가지로 요약해볼까 한다.

 

 

첫 번째로 문화재 훼손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모스크로 전환된 하기아 소피아에서 이슬람 예배를 드릴땐

후진의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 모자이크는 커튼으로 가리거나 레이저를 투사해서

안보이게 할 예정이라고 한다.

레이저가 어떤 방식으로 모자이크를 가릴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즉 어떻게 할지 준비가 안됐단 소리다.

모자이크라는건 굉장히 민감해서 조명의 세기도 조절해야하고 강한 빛을 반사하면

색이 탁해지는데 당장 24일에 열릴 첫 이슬람 예배에서 어떻게 할려고 그럴까?

카리예 박물관에서도 모자이크를 향해 직접 조명을 투사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하기아 소피아 모자이크를 제대로 보존할 수 있을까?

 

후진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 모자이크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기아 소피아는 지금도 손봐야할곳이 한두군데가 아닌 문화재이다.

1년에 330만명이나 되는 관광객들이 내는 비싼 입장료(100리라: 현재 환율 17560원)로

현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를 무료화 할 경우 관리측면에서 소홀해지지 않을까?

지지층 단결을 위해 한 해 입장수입 500억원을 포기한다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이슬람 장식만해도 보수할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당장 모스크로 전환하는게 그렇게 시급한 일일까?

 

두 번째로 모스크로 전환된 분위기에선 복원작업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기아 소피아의 복원작업은 1930년대 모자이크 복원을 기본틀로 해서

2009년에 천사의 모자이크를 복원하는등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이던 당시에도 기독교와 이슬람 장식 양쪽을 고려해서 아주 신중하게 복원작업을

해왔는데 이제 완전히 모스크가 된 이상 이슬람 유산만이 보수되거나

복원작업 전체가 지지부진해질 것은 너무도 확실하다.


몇년전에 하기아 소피아 모스크 전환 이슈가 다시 등장했을때

에르도안을 지지하는 터키인과 하기아 소피아의 모스크화에 찬성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이야기하는 바가 가관이었다.
하기아 소피아는 전시품도 없는데 무슨 박물관이냐면서 모스크로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만약에 모스크로 개조되면 이슬람은 성화를 우상으로 보는데 복원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는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니 제거하거나 다시 오스만 제국 시대처럼 회칠로 덮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후 정이 떨어져서 다시 이야기하는일은 없었다.

 

 

세 번째로 하기아 소피아가 지니고 있는 종교간의 화해, 관용의 정신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터키는 98%가 이슬람 교도지만 아나톨리아 지역의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오늘 주제인 하기아 소피아, 모스크로 전용된 동로마시대 구 정교회 성당들, 성모마리아의 집,

성 요한교회 유적들이 보존되어있고 세속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외국의 기독교도들도 성지순례로 자주 찾는 관광지이다.

 

하기아 소피아가 아니라도 각기 다른 종교가 하나의 건축물에 녹아들어간 케이스는 많다.

하지만 하기아 소피아처럼 다른 종교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문명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은 보기 힘들다.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을 찬양하지만 레콩키스타 당시 이베리아 반도를 수복한 스페인 왕조가

무슬림 왕조의 흔적을 지우기위해 대대적인 개조를 가했고

지금 우리가 보는 알함브라 궁전은 현대에 많은 부분이 새로 만들어져 추가된 것이 사실이다.

두 곳을 다가본 나로서는 하기아 소피아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세상에 하기아 소피아처럼 건물 기둥에 있는 작은 흠집에도 그 속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나

궁금해지는 건물이 또 있을까?

 

하기아 소피아의 작은 흔적도 관람객을 멈춰서게 만든다.

 

터키의 이슬람주의자들은 과거 하기아 소피아의 박물관 전환이 아주 잘못된 일이었다고 말한다.

모스크 전환 이후에도 모자이크가 보존되는 것은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환영할 일이나

터키의 이슬람주의자들이 원하는대로 하기아 소피아가 박물관으로 개조되지 않았다면

동로마 시대 모자이크들이 세상에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긴 힘들 것 같다.

 

한가지 분명히 해야할게 하기아 소피아를 어떻게 할지는 전적으로 터키의 고유권한이라고 생각한다.

하기아 소피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건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의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혹자는 하기아 소피아가 인류의 유산이기 때문에 터키 마음대로 해선 안된다고 하지만

영국이 파르테논 대리석군을 돌려주지 않을 때도 같은 논리가 아니었나.

단지 잘 관리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쉽게도 그 고유권한을 슬기롭게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들이 많다.

500억원을 포기하면서까지 21세기에 종교적 단결을 공고히 하려는 터키도 그렇지만

좀 다른 케이스지만 우리도 구 서울시청을 기습철거하려고 한지 10년이 조금 지났을 뿐이다.

지금도 일제강점기 건물들에 대해 흉물과 문화재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2020년엔 더 이상 문화유산을 국가의 수단으로 삼는 일이 없어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